깨달은 바를 말없이 마음에 새겨둠

#모기 입도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가 지나서인지 아침저녁이 제법 시원해졌습니다. 계절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도 오고 갑니다. 돌고 도는 게 세상 이치라 인생 역시 자연의 순환을 조금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번에 우리는 연달아 두 명의 대통령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건국 이래 전국민이 가장 많이 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눈물의 재고량을 조사한다면 아마 바닥이지 싶습니다. 눈물에는 신기한 마력이 있다고 합니다. 통증을 누그러뜨려 주는 로이신케팔린이라는 성분이 그렇습니다. 더 신비로운 것은 양파 껍질을 벗길 때 흘리는 눈물에는 그런 성분이 없다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요즘 시중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합니다. 이명박 정권 때, 퇴임한 역대 대통령 중 4명이 서거할 것이라고 하는 소문이 그렇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연초부터 우리는 정신적인 지주를 하나 둘 씩 떠나보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김대중 前 대통령까지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처럼 강인한 분이 실없이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의 죽음이 크게 작용 했을 것입니다. 그분이 남긴 마지막 일기에도 노 前 대통령의 죽음을 얼마나 비통해 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고 했습니다만, 자꾸만 아쉬운 것은 그분의 자리가 너무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자님도 가는 세월을 어찌할 수 없었는지 냇가에 앉아 크게 탄식을 했다고 하는데, 천상탄(川上嘆)이 그렇습니다. ‘서자여사부(逝者如斯夫)인저 불사주야(不舍晝夜)로다’ “가는 것은 모두 이와 같은가, 밤낮없이 흘러 쉼이 없구나!” 어디 공자님만 그러겠습니까. 결국 우리는 언제가는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인간이하의 짓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연민의 정이 앞설 뿐입니다.

#故 김대중 前대통령은 늘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보다 어떻게 살아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이는 결코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 되려고 하는데 혈안이 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철저하게 짓밟아서라도 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죽음은 우리들에게 참 많은 것을 안겨주고 가셨습니다.

#그레이스 팔레이는 “두 번 이야기하면 뭐든지 다 허구가 된다” 고 말했지만, 아무리 이야기 하고 또 해도 김대중 前 대통령은 허구가 아닌 역사가 되었음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감동이란 레토릭(수사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세리티(진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보여 주셨습니다. 비록 이렇게 영면(永眠)하셨지만 모든 사람들 가슴 속에서 다시 부활 할 것을 확신합니다. 이제 슬픔을 거두고 묵이식지(默而識之:깨달은 바를 말없이 마음에 새겨둠)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삶을 가슴 깊이 간지하며 이 눈물과 함께 그분을 떠나 보냅니다. 그분의 무덤은 땅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에 있습니다.

홍봉기 기자  -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