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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엄마양관수 소설가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3.11.2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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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 스님은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깊다. 어머니 생신 잔치에서 갑자기 옷을 다 벗고 여러 축하객이 보는데도 알몸으로 춤을 추었다. 그 잔치는 난장판이 되었다. 어머니부터 저놈이 미쳤구나,라고 소리쳤다. 축하객들 모두 경허에게 욕을 퍼부었다. 다시 옷을 입은 경허가 어머님께 ‘어린 저의 알몸을 씻어주시고 춤추게 하던 그 어머니가 아니군요. 저도 그때의 제가 아니고요’라 말했다. 경허는 어머니 곁을 떠났다. 이후 깊은 산골로 들어가 젊은 여인과 살았다는 설이 있다.

미친듯한 경허 행동은 무의식이다. 어린 아들의 알몸을 씻기고 닦아준 엄마다. 알몸으로 춤추는 아들을 보고 손뼉 치며 즐거워한 엄마다. 그 시절이 나이든 경허의 엄마 기억에서 가장 선명하다. 성인이 되어도 어릴 적 엄마가 끓여준 된장국 맛을 잊지 못하는 거와 같다. 그 기억을 무의식이라 한다. 경허의 무의식은 엄마 모습보다 모성애에 초점을 둔 것이다. 어릴 적 엄마는 모성애의 아이콘이다. 그 엄마는 젊다. 애틋한 모정이 없다면 아름다운 엄마가 아니리라. 생일잔치에서 엄마는 경허에게 모성애를 보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다. 엄마도 경허도.

속설대로 경허가 산골로 들어가 젊은 여인과 함께 산다면 그건 무의식의 엄마를 좇은 것이다. 경허는 그 여인과 한 방에서 아기자기하게 살았으리라. 젊은 여인은 경허에게 모성애를 두고두고 배풀었으리라. 경허는 젊은 여인에게서 어릴 적 엄마의 젖가슴을, 부드러운 손길을, 정이 듬북 담긴 눈길을 받았으리라. 

어쩌다 그 여인이 밥도 떠먹여 주었으리라. 고향의 노모와 꾸려가기엔 낯뜨거운 일들이다. 경허는 무의식에 담긴 모성애를 좇아 젊은 여인과 살았으리라. 젊은 여인의 어딘가는 경허의 생모와 닮은 데가 있으리라. 경허가 품에 안은 여인은 젊은 생모의 아이콘이다. 경허가 젊은 여자보다는 젊은 모성애와 함께 살았다.

모성애를 언급한 소설가가 있다. 밀란 쿤데라인데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한 모티프를 소개한다. ‘그가 아내를 보면서 연상했던 어머니의 이미지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의 어머니, ~ 그의 엄마는 아내로부터 사라져버렸다. 아니,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아내는 한 번도 어머니와 같지 않았다. 

그는 갑작스레 치미는 증오심 속에서 이것을 깨달았다.’(135쪽) 이 인용문은 남편 프란츠가 아내 마리클로드에게 증오심을 갖게 되는 순간을 묘사했다. 이후 그는 딸 또래 대학생 제자와 동거한다. 경허처럼 젊은 모성애를 찾아간 것이다. 경허도 모성애가 변한 엄마 곁을 떠났다.

프란츠는 아내에게 모성애가 없다는 걸 확인하자 증오심을 품었다. 이 두 사례처럼 남성은 자신에게 모성이 없기에 모성애에 집착하는 것이다. 여성은 자신이 모성이기에 성인이 돼도 무의식적 모성애에 집착하지 않는다. 반대로 남편에게 부성애를 기대한다. 자상한 남편이라는 말은 흔하다. 자상한 아내라는 말은 찾아보기 힘들다. 남성에게 모성애는 무의식이고 당연하다. 모성애와 아가페는 서로 다르지 않다. 둘 다 마돈나인 것이다.

여인이여 젊은 아들은 머지않아 당신 곁을 떠난다네. 늙은 남편을 어린 아들처럼 사랑하시길. 늙은 아들은 떠나지 않는다오. 새댁이여 엄마인 듯 신랑을 사랑하시길. 신랑이 증오심을 품지 않도록.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으뜸은 모성애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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