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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와 정병욱 그리고 노벨문학상나종년 광양경제신문 논설위원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3.08.1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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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윤동주와 정병욱은 1940년 4월 일제 강점기에 연희전문학교에서 만나게 되었다. 중앙의 일간지에 기고된 정병욱의 ‘뻐꾸기의 전설’을 읽고 감명을 받은 윤동주가 정병욱을 찾아가게 된 것이다. 

윤동주가 3학년, 정병욱이 1학년, 윤동주가 2년 선배였다. 두 사람은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며 문학을 통해 빼앗긴 민족정신을 되찾고자 하였다. 이때 쓰인 詩가 지식인의 고뇌를 뜨거운 가슴으로 노래한 序詩, 별 헤는 밤, 또 다른 고향이다. 특히 ‘별 헤는 밤’의 마지막 구절,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 (중략)~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는 정병욱의 조언을 들어 윤동주가 추가한 내용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존경하고 의지하면서 2년 가까이 동거동락하며 학교를 함께 다녔다. 

1942년 2월경 윤동주는 졸업을 앞두고 시집을 내려고 3부를 직접 써서 제본을 하였다. 그리고 지도교수 이양하 선생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한글로 써져 있고 내용이 일제에 저항하는 글들 이여서 스승은 제자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훗날을 기약하자고 만류를 하였다. 동주는 생전에 시집을 못 내보고 시인으로 불리어 보지 못한 채 詩 ‘참회록’을 남기고 도쿄의 릿교대학을 거쳐 교토의 도시샤대학으로 유학을 하게 되었다. 도쿄의 릿교대학, 일본의 심장에서 그는 ‘쉽게 쓰여 진 詩’를 통해 육첩방(여섯개의 다다미가 깔린 하숙방)은 남의 나라라고 당당하게 외쳤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경찰에 의해 ‘조선독립운동 혐의와 선동, 치안유지법위반’으로 후쿠오카형무소에 수감되고 말았다. 

정병욱은 44년 1월, 태평양전쟁의 막바지 전세가 불리해진 일제의 전 국민 총동원령에 의해 연희전문학교 조기졸업과 함께 강제징집을 당해 오사카에 배치되어 미군과 싸울 수밖에 없는 처지였고 미군의 폭격에 의해 오른팔에 큰 부상을 당하게 되었다. 정병욱은 징병으로 끌려가기 전에 윤동주가 자신에게 전해준 육필원고를 어머니께 맡기며 “동주형이나 제가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면 이 원고를 꼭 학교에 전해 달라”고 유언처럼 맡기고 떠났었다. 어머니는 이 원고를 명주 보자기에 정성껏 싸서 광양가옥의 마루 바닥 밑에 항아리를 묻고 그 속에 원고를 보관해 아침, 저녁으로 아들의 무탈을 빌고 빌었다. 

1945년 8월 15일,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조국의 광복이 찾아왔건만 동주는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2월 16일 새벽 3시 36분, 비명소리와 함께 하늘의 별이 되었다. 8월 21일경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병욱은 광양에서 감격적으로 부모님과 재회하고 며칠 후 동주형의 순국소식을 접하고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그리고 동주형이 준 원고를 가슴에 안고 굳게 다짐하였다. 동주형이 못다 이룬 민족문학정신의 계승을 꼭 이루어 내겠다는 굳은 의지를 마음 깊이 새기었다. 병욱은 동주의 친우 강처중과 함께 1948년 1월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세상 밖으로 내놓았다. 윤동주가 시인으로 부활하게 된 것이다.

정병욱은 1982년 10월, 그리운 동주형 곁으로 갈 때까지 굳센 신념으로 동주의 영혼을 우리들에게 재조명 해 주었다. 서울대학교 교수 25년 재직 중에 출판문화상수상 상금전액을 기부해 연세대 교정에 윤동주詩碑를 건립하고 외솔상수상 상금전액을 윤동주장학금으로 기탁했다. 그리고 ‘시조문학사전’ ‘국문학산고’ ‘한국고전시가론’ ‘한국고전의 재인식’ ‘한국의 판소리’를 집필해서 동주가 이루고자 했던 우리 민족의 얼과 기상을 되찾는데 일생을 다 바쳤다. 개인적으로 누이동생 정덕희와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와 혼인을 이루어 아들인 윤인석前 성균관대 교수와 정병욱교수의 차남인 정학성前인하대교수가 광양을 자주 방문해 정병욱가옥에서 방문객들에게 두 분의 만남과 우정을 이야기 해 주신다. 

정병욱교수의 외조카이며 정병욱가옥의 소유주이신 박춘식님의 전언에 의하면 “아버지(故박영주님. 정병욱교수와 내외종간)께서 말씀하시기를  41년 4월경 윤동주시인이 광양을 방문하여 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는데 말씀하시는 그 인상착의가 윤동주시인과 똑 같았다”라고 이야기 하신다. 우리세대가 생존해 있을 때 더 분명한 사료가 발견되어 광양과의 인연이 더욱 각별해 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시민 모두의 염원을 모아 윤동주와 정병욱의 목숨을 다한 만남과 믿음을 더욱 빛나게 하고 서시와 별 헤는 밤, 자화상을 널리 알리고 ‘하늘과 별과 바람과 詩’, 정병욱의 ‘뻐꾸기의 전설’ ‘시조문학사전’ ‘한국의 판소리’를 영어, 일어, 불어, 독일어, 중국어로 번역하여 세계인들에게 두 사나이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널리 널리 홍보하여 노벨문학상에 자신감 있게 도전해야 할 것이다. 가능성과 스토리가 충분하다고 본다. 이것이 우리들의 몫이요, 시대적 사명이라고 필자는 굳게 믿는다. 오늘도 광양 망덕포구 섬진강의 물결이 별빛처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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