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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은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주범이다
  • 홍봉기 기자
  • 승인 2022.12.2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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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수시로 남들과 비교하곤 한다. 비교의 대상이 항상 나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누군가를 몹시 부러워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비싼 집에 살아도 매일 밤 혼자 고독하게 잠들지 모르는 일이고,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어도 마음 하나 나눌 사람이 없어 괴로워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실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많이 소유한 자들이 꼭 행복지수가 높은 것도 아니라는 것은 여러모로 위안이 되기는 한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가 행복마저 독점한다면 정말 억울할 일 아니겠는가. 물론, 지나치게 가난한 사람도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매일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그 자체 만으로도 행복의 가치는 충분하지 싶다.

어쩌면 그래서 나온 고사가 지족가락인지 모른다. 만족하면 즐겁다는 뜻인데, 아마 이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만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쉬워도 말한대로 실천하면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명심보감에 이르기를 大廈千間(대하천간)이라도 夜臥八尺(야와팔척)이요 良田萬頃(양전만경)이라도 日食二升(일식이승)이니라.고 했다. “천 칸의 큰집에 살더라도 밤에는 여덟 자에 누워 자고 좋은 밭이 만 이랑이 있더라도 하루에 두 되 곡식을 먹는다”는 뜻인데 곱씹을수록 위로가 되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주위에 모든 것을 다 갖춘 名門 大家도 불과 3代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을 수 없이 목격했을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사람들이 그토록 선망하는 부처, 예수, 공자 등은 하나 같이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는 것. 그렇다고 가난을 옹호하거나 찬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많은 물질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 진짜 행복한 사람은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만족을 모른다면 그가 바로 가난한 사람이다. 그리고 지족가락(知足可樂)은 항상 무탐즉우(務貪則憂)와 쌍으로 동행한다. 지족가락이 만족하면 즐겁다는 뜻인데 반해 무탐즉우는 욕심을 내는 순간 근심이 따른다는 뜻이다. 살다 보면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인간의 자기 한계이기는 하지만, 비교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고, 또 자신만 비참해진다면 그런 어리석을 짓을 반복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타인의 저울로 나를 평가하지 말고 내 인생을 어떻게 잘 꾸려나갈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는 게 훨씬 현명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지나친 욕심은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주범이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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