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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볕소설가/양관수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2.06.2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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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장터목산장 2층은 잠자는 등산객들로 빈틈이 없다. 나도 잠을 자야 하는데 오히려 의식은 멀쩡하다. 시계를 보니 두 시 반이다. 밖이 궁금하다. 침낭을 빠져나가 잠자는 등산객들 사이를 비집고 1층으로 내려간다. 밖은 아무도 없고 고요한데 눈 앞에 펼쳐진 현상은 현실 같지 않다. 하늘 아래가 온통 하얗다. 지상이 모두 표백되었다. 구름이 몽땅 땅으로 가라앉았는지 하늘에서는 달빛만 쏟아져 내린다. 달빛 받은 구름 자락들이 바다를 이루는데 반야봉을 지나 노고단 쪽으로 굽이친다.

누군가 산장 출입문을 밀치며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을 내려선다. 흙을 밟더니 장터목 경관에 짓눌려 비명을 지른다. 감탄사를 연발하는데 여자다. 나와 서너 걸음 떨어진 앞으로 다가선다. 등을 돌려 노고단 쪽을 바라보며 사진기를 들고 초점을 맞춘다. 여자의 뒷모습이 낯익다.

내가 천왕봉을 넘어 장터목산장으로 내려올 때였다. 챙이 넓은 겨자색 둥근 모자를 쓴 그녀가 널따란 바위에서 허리를 굽혀가며 카메라를 들여다보았다. 그녀 모습을 살짝 비껴보니 저만치에 고사목이 보였다. 고사목을 찍으려는 것일까. 나는 쉴 겸 인기척을 내며 그녀 옆에 앉았다.

땀에 전 내 몸이 식을 때까지 그녀는 렌즈만 들여다보았다.
능선에 물방울처럼 배어든 단풍이 외에는 티 한 점 없는 지리산. 하늘에 반사된 초록은 눈부셨다. 신선처럼 선 고사목은 지리산 품격을 드높였다. 산행에 지쳐 쉬려는 나도 지리산이었다. 카메라로 뭔가를 찾아 헤매는 그녀에게서도 지리산을 느꼈다. 지리산을 아우르는 그 향기에 나는 젖어 들었다. 그녀는 내가 찾아 나선, 갖고 싶어 하던 지리산의 숨은 모습이었다. 그녀 옆에서 마냥 쉬고 싶었다.

내 몸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바위에 앉아 쉰 시간이 긴 탓에 몸이 굳어지려 했다. 떠나야 했다. 내가 배낭을 메며, 고사목보다 멋있어요. 라고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첫발을 떼려는데 그녀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빙긋 웃으며, 고맙습니다. 그러고 그만이었다. 그녀가 지금 내 앞에서 등을 돌리고 서 있다.

“정말 예쁘다, 이렇게 멋있는 밤은 처음 봐요.”
“인연이지요, 스치는 것이지만 아무렇게 만날 수 없지요. 지금을 찍나요.”
“나중에 사진 보면 실망해요, 낮에 그분? 아까 칭찬, 좋았는데요, 모르셨죠?”
나는 달을 우러러본다. 옛날, 남원 쪽 사람과 진주 쪽 사람이 만나 물물교환을 한 장터목에서 그녀와 더불어 달빛을 지붕 삼는다.

“저 달에 입술을 쭉 내밀면 키스도 하겠죠?”
“너무 밝아서 싫어하지 않을까요.”
더는 서로 말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물을 수 없다. 둘은 달을 바라볼 뿐이다. 달이 기울고 운해는 흩어지며 능선을 부순다.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이 다 순간이고,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걸 지리산은 몸소 보여준다. 동이 트나 보다. 실낱같은 돋을볕이 그녀 발자국을 뒤따른다. 나는 햇살로 눈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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