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간다        時 김억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김소월 스승으로 알려진 김억 시인은 아쉬운 봄을 짧은 밤에 비유했다. 어려운 구절 하나 없지만 마음이 먹먹해지는 것은, 그만큼 보편적인 사람들의 정서를 잘 읽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역시 시는 보편적인 정서에 부합해야 감동도 두 배가 되는 법이다. 그는 ‘밤이도다/봄이다’라는 절묘한 대구를 통해 삶의 본질을 한 순간에 깨닫게 만든다. 밤이라는 시간은 일상의 낮과는 다른 시간이며 낭만적인 시공간이다. 봄 또한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청춘의 시간이며 낭만적인 사랑의 시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은  ‘밤만도 애달픈데/봄만도 생각인데’라고 표현하면서 그 행간을 독자들 스스로 상상하도록 만든다. 

잠들지 못하고 홀로 깨어 있는 봄밤에 그는 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꽃이 지면 결국 봄도 가는 법, 그래서 지난 4일 밤, 금호동을 환하게 밝힌 밤 벚꽃 마중을 나갔다. 9시가 넘었는데도 사람들은 벚꽃 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벚꽃은 조명 따라 수시로 색깔을 바꿨다. 마치 변덕이 심한 사람의 마음처럼. 바람이라도 살짝 불라치면 벚꽃은 하얀 꽃눈으로 변해 떨어져 내렸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또 탄성을 질렀다. 벚꽃이 지는 모습이 아름답게 서러운 것은 우리 인생도 결국은 저 꽃처럼 언젠가는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일 게다. 
금호동 벚꽃도 아름답지만, 광양읍 서천변 벚꽃 역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천변을 따라 만개한 벚꽃 길을 걷고 있노라면 여기가 무릉도원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에는 감정을 약간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도 괜찮다. 우리는 한탄하기 위해 태어난 인생이 아니라 감탄하기 위해 태어난 인생이기 때문이다. 

서천변 벚꽃 길을 걸으며 자작시 한 수를 읊었다. “술이 없는 봄날은 하루가 천년이요/ 님이 없는 봄날은 하루가 만년이라” 그래서 벌과 나비도 ‘꽃 술’에 취해 그렇게 사경을 헤매는 것 아니겠는가. 이번 주 지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벚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바쁜 일상에 발이 묶여 벚꽃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아직 엔딩 중일 때, 서둘러  벚꽃 길을 걸어보기 바란다. 고정희 시인은 ‘모든 사라진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며 애절하게 노래했는데, 벚꽃 역시 그대를 위해 여백을 남겨둔 채 피날레를 준비하고 있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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