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처지고 꿀꿀할 때 내가 집어 드는 책이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다. 지금까지 읽은 여러 책 가운데서도 참, 괜찮은 책으로 손꼽으며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추천하는 책이기도 하다. 독자도 알다시피 그리스인 조르바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책 속의 화자로 등장하는 주인공인 카잔차키스와 조르바는 실존인물이라서 더 실감난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갈망하지만 대부분은 남의 시선과 두려움 때문에 일상의 틀 안에서 삶을 견뎌낸다.

나 역시 그런 범주에 드는 평범한 사람 중에 하나이기에 화자인 주인공이 조르바의 유쾌, 상쾌한 행복 방정식에 어리둥절해 할 때마다 미소가 지어지며 공감하게 됐다. 조르바처럼 나 자신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내가 즐거울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의무와 도리와 일상의 범주를 깨트릴 그 어떤 용기도 내지 못한다.

주인공이 조르바를 부러워하면서도 쉽게 변하지 못하는 이유다. 늘 다른 사람의 시선에 얽매여 있는 소심한 나와 같다. 나 역시 카잔차키스처럼 생각만 많은 1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진다. 엄마와 아내라는 의무와 도리 안에서 눈감고 있는 나의 영혼이 책 속의 문장들과 더불어 날개를 단다. 나는 그렇게 책이 달아주는 날개를 펴고 꿈속을 여행한다.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속의 삶의 조각들을 야금야금 맛보는 것이 좋다. 그러한 행위는 나의 지적 상상을 넓혀주고 사유의 깊이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젊어서는 문학 장르만 고집하고 편식이 심했다. 요즘은 의지적으로 인문학 관련 책들도 손에 잡는다. 아이들이 만화책과 동화책을 함께 집듯이…  도서관과 서점과 인터넷 알라딘을 애용하는 나는 감동이 깊고 여운이 길게 남은 책은 리뷰를 저장해두고 책을 구입해서 메모를 해둔다. 몇 년, 몇 월, 며칠에 어떤 마음으로 읽었노라고…언제일지 모르지만, 또 다시 읽고 싶을 때 그 메모는 나를 낯선 모습으로 반길 것이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야단맞고 감나무 아래서 울고 있을 때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헌 책방으로 데려간 아버지의 선택은 정말 탁월했다. 그때 책을 만났고, 첫눈에 빠져 들었으며, 평생 책을 품고 잠자리에 드는 행운을 가졌다. 책은 나를 엄마의 폭풍 잔소리에서 해방시켰고 내가 꿈꾸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워 주었다. 

독서도 나이가 드니 삶의 연륜과 함께 ‘채움’과 ‘비움’이 엇갈리면서 나의 생각을 바다속처럼 깊게 하고 태산처럼 크게 하는 것 같다. 근심걱정에 휩싸여 불안했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얽혀있던 생각의 갈래들이 제 자리를 찾아갈 때 마다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과 깨달음 덕분에 행복하다. 내가 사람들에게 치여 힘들 때 또는 고요하고 외로움에 부대낄 때 책 속의 주인공들이 나를 품어주니 이 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내가 책을 놓지 못하고 평생 그리워하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요 행운이라고 내 나이 지천명이 넘어서야 고백한다. 사랑한다. 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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