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곁에서 서성거리던 바람이 가끔씩 책장을 넘긴다.

길고 지루하던 산문(散文)의 여름날도 책장을 넘기듯

고요하게 익어가고오구나무 가지 사이에 투명한 매미의 허물이 붙어있다.

소리 하나로 여름을 휘어잡던 눈과 배와 뒷다리의 힘,

저 솜털의 미세한 촉수까지도 생생하게 붙들고 있다.

매미의 허물 속으로 입김을 불어 넣어주면

다시 한 번 여름을 공명통처럼 부풀려 놓을 것만 같다.

한 떼의 불량한 바람이 공원을 지나고

내 머리 위로 뚝 떨어지는

저 텅 빈 기호 하나,

정수리에서부터 등까지 북 내려 그은

예리한 저 상처.

-시집 『왼손의 쓸모』천년의시작(2006)

지난주 일요일, 나는 서천변 공원에 앉아 책을 읽었다. 바람은 시원했고, 바람은 간간이 책장을 넘겨주었다. 삶이란 때때로 알 수 없는 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마음의 페이지들을 넘기는 법. 아무리 본인 의지대로 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우리들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머리 위에서는 매미 한 마리가 절박한 심정으로 목청을 다해 울고 있었다. 짝짓기 한 번 하기 위해 7년의 세월을 땅 속에서 보낸 매미.. 하긴, 절박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알고 보면 우리는 다 그렇게 절박하고 또 절박한 인생들이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렇게 최선을 다해 울어 본 적이 없다. 내 한 사람 울어댄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냐, 며 언제부터인지 내 눈은 위를 보는데 익숙해지고 말았다. 그래 저 매미의 울음은 차라리 내 속에서 그렇게 울부짖고 싶어 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는지 모른다. 책을 덮고 나도 한 번 울어보리라 다짐을 하고 입을 열었는데 아무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울어야 선탈(蟬脫)한 매미처럼 모든 허물을 벗을 수 있는 것일까... 장마로 지루한 여름이 한 페이지씩 넘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나는 여름의 문장과 내 삶의 페이지를 다 읽지 못한 채 이렇게 떠돌고 있다. 읽어도 읽어도 다 해독할 수 없는 인생이여, 그대 마음이여! /홍봉기기자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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