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관공 김씨 /詩홍석주

배관공 김씨는 평소보다 담배를 더 많이 태웠다

추석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야근을 마치고 돌아가던 밤, 달빛은 또 어쩌자고

저렇게 밝기만 한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시골 어머니께 용돈이나 부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젠장 할, GNP는 오르고

국가등급은 높아졌다는 데

내 등골은 어째서 이렇게 휘기만 하는지

배관공 김씨는 두더지처럼

달동네 지하방으로 기어들었다

지난 해 여름 장마가 방문하고 간, 방에는

정체불명의 곰팡이들이 슬픔처럼 번졌다

이러다가 제 명에 못살지

암, 제 명에 못살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

배관공 김씨는 은행이라도 한 번 털어볼까,

하다가 달빛 그림자 부끄러워 헛기침을 하며

눅눅한 이불 속으로 몸뚱어리를 쑤셔 넣었다

고향소식을 전한답시고

새벽바람은 김씨가 잠든 지하방 창문을 흔들었다

           1인칭 슬픔보다 2인칭 슬픔이 더 가치가 있다

명절은 가난한 사람 마음을 더욱 움츠려들게 만든다. 다들 설 명절이라고 선물 장만에 정신이 팔렸겠지만, 가난한 서민들이 어디 그럴 수가 있겠는가.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란 그런 것이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아보지만, 마음은 영 편치가 않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의 슬픔과 접속돼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결국 남루(襤縷)하게 여겨지는 슬픔과 동정심이 우리의 마음을 성숙시키고 성장시키는 법이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1인칭의 슬픔보다 2인칭의 슬픔이 더 가치가 크다고 했던 것이다. 배관공 김씨의 모습은 가난한 우리 이웃과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늘어나지 않는 통장의 잔고와 생의 노곤한 모습은 자본주의 삶에 지치고 피폐해진 우리들 자화상에 다름이 아니다.

 현대인이 불행한 것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동일하게 고통스럽다는 데 있다. 부자는 재산을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가난한 자는 부자를 시기하므로 인해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기 쉽다. 젠장, 가난한 집 제사 자주 돌아온다더니 명절은 왜 이렇게 잘도 찾아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조상님께 그저 미안할 뿐이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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