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수 순천하늘씨앗교회 목사

나는 미연합감리교단 소속 목사라 은퇴를 하기 위해 미국을 댕겨왔다. 아니, 은퇴를 하기 위해 떠났다기보다는 그곳에 살고 있는 아내를 만나러 갔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이다. 후배 목사들은 은퇴하는 목사들을 보면서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내 귀에는 경쟁자들이 줄어들었다는 안도감의 박수소리로 들렸다.
하긴, 요즘처럼 목사들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힘없고 늙은 사람들은 빨리빨리 자리를 비켜주는 게 도리이기도 할 테다.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이 아파도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나는 은퇴 자체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편이지만, 공식적인 유통기한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지난날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배고픔을 겪어야 했고, 6.25 때는 또 부산 판자촌에서 어렵게 살았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누구 말처럼 흘러간 것들 치고 그립지 않은 게 없고 그리운 것들치고 흘러가지 않은 게 없다고 했다는데, 나 역시 그랬다. 그 당시는 비록 가난했지만, 운 좋게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하는 영광을 안았고 송두율, 김지하, 윤구병 등 쟁쟁한 석학들과 함께 캠퍼스를 누비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누구나 은퇴를 하게 되면 섭섭하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위축될 필요는 없지 싶다. 은퇴란 영어로 retire라고 하는데 자동차 tire(타이어)를 새로(re) 바꿔 끼는 것에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오랫동안 도로를 달리다 보면 바퀴가 마모되게 마련인데 사람이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는가. 문제는 수명이 길어져 은퇴를 했어도 너무 오랜 기간 생존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진국 모든 나라들의 문제가 되고 있다. 수명이 길다는 것은 축하할 일인지 모르겠으나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천덕꾸러기가 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고령화 사회란 65세 이상 인구가 5%를 넘는 것을 말하는데, 2022년에는 14.3%가 넘어 고령 사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은 선진국에 비해 무척 빠른 것이 특징이다. 고령 사회로 진입하는데 스웨덴이 85년, 미국이 70년, 가장 빨리 진행되었다는 일본도 25년이 걸렸는데, 우리나라는 22년 정도 밖에 걸릴지 않는다 하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님에는 틀림없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자꾸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더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바라기는 노인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지,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강하게 할 필요가 있지 싶다. 노인들의 경험을 잘만 선용한다면 국가 경제에 큰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노인(老人)은 노인(路人) 즉, 우리에게 보다 올바른 길을 안내 해 줄 수 있는 표지판임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데스크  -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