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망 록 문정희 시인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 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사랑은 확인하는 게 아니라, 확신하는 것이다
사춘기 시절에는 누가 시켜서도 아닌데 비망록(備忘錄)을 쓰게 된다. 이름 그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을 몰래 기록하는 것이 비망록인 셈인데, 대부분 첫사랑과 미래의 연인들로 도배가 되다시피 한다. 요즘도 비망록을 쓰는 사람이 더러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아마 드물지 싶다.

모든 게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글쓰기는 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사랑에 빠져 본 사람은 알고 있다. 어딘가에 그 사람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증이 발생한다는 것을. 그래서 사랑하는 사름의 이름을 돌과 나무에도 새기면서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시인의 고백처럼 항상 남보다 나를 먼저 사랑하게 되는 게 사람의 본성이다. 사랑은 결코 언어로는 전달이 불가능한 법이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지 그 속내를 알고 싶지만 미안하게도 확인은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에 매달리는 것이다. 때로는 파국으로 끝날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 생애를 모두 투자하면서 허둥거리는 것이다.

‘워크 투 리멤버’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의 사랑은 바람과 같아서...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고...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디 이 시인만 한 생애를 허둥거리겠는가.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가슴에 매달린 채 그렇게 허둥거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가끔씩 자기만의 비망록을 채워가면서 말이다.

홍봉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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