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시대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급격한 혼란 속에 빠지고 말았는데, 소위 말하는 아노미 현상이 그렇다. 아노미(Anomie)는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규범이 사라지고 가치관이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개인적 불안정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아노미 상태에 빠지면 삶의 가치와 목적의식을 잃고, 심한 무력감과 자포자기에 빠지게 되는 병리 현상이 발생한다. 그렇게 된 이유야 수없이 많겠지만 그 중에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정신문화의 붕괴다.

그러나 무너진 정신문화를 다시 복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서예가 전종구 씨가 그 주인공이다. 서예가 외면을 받고 있는 요즘이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서예의 중흥기였다.

그 당시만 해도 글씨를 쓰는 필경문화가 살아있었다. 그래서 웬만한 집에는 다 벼루 하나쯤은 구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부터 필경문화는 급속하게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되는데 문제는 정신문화도 함께 붕괴되고 말았다.

그는 필경문화가 사라지게 된 것에 대해 몹시 안타깝다고 말했다. “90년대 들어 부동산 광풍이 불자, 사회는 물질만능주의 속에 빠지게 되면서 사람들 정신은 스스로 피폐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라는 공동체사상이 무너지고 오로지 나만을 위한 개인주의가 득세를 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무너지게 됐다"고 진단한다.

“우리 문화는 곡선문화다. 남에게 도움을 주고 한 번 더 서로를 생각하는 문화였다. 그러나 서양의 직선문화가 들어오면서 사람의 가치관은 빠르게 망가지고 말았다. 서예야 말로 사라진 우리의 정신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서예에는 3가지 논리가 있다. 法의 논리, 道의 논리, 藝의 논리가 그렇다. 법의 논리는 문자를 통해 지배계급들이 통치수단으로 삼았으며, 도의 논리는 깨달음을 통해 자기를 다스려가는 것이고, 예의 논리는 그 둘 사이를 이어주는 것으로써 시각적인 표현을 통해 심상을 다듬어 가는 것이다." 서양 예술이 면 중심으로 채색을 입혀가는 것이라면 우리 예술은 선(線)을 중심으로 이어가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붓을 통한 선의 예술은 너무나 다양하다. 때로는 거칠고 부드럽게 또 때로는 강하고 가볍게 선을 자유자재로 이어갈 수 있다." 고 한다. 문제는 서예가 점점 자기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는 데 있다. 그 이유는 너무나 어려운 한문과 전통의 규범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이라고."이제 서예도 사람들의 성향에 맞도록 눈높이 교육을 해야 한다. 그리고 어려운 한문보다 자연스런 우리 한글을 통해 자유자재로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미래는 캘리그라피(손글씨)을 디자인해 상품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예는 여전히 매력적인 상품가치를 가지고 있다. 일본은 껌 종이 하나에도 캘리그라피를 통한 디자인을 사용해 제품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서예의 비전 또한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광양시민들과 소통이 뜸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올해부터는 중앙문단보다 지역민들과 함께 소통하는 장을 만드는데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화려한 이력에 비해 언론에 잘 노출하지 않았던 것은 혹시나 자기모습이 과장되거나 부풀려지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현재 부민서예원을 비롯, 대학에 출강하며, 강의하고 있다.

홍봉기 기자  -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