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성 수 하늘씨앗교회 목사

흐드러지게 핀 꽃들의 자태를 보고 있자니 곧 70을 앞둔 나이지만 마음이 설렌다. 해마다 피고 지는 게 꽃이지만 나이가 들어 갈수록 꽃에 대한 감정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지난 주에는 또 쌍계사 벚꽃 길을 걸으며 오지게 행복했다. 바람만 살짝 불어도 벚꽃은 꽃눈처럼 날리곤 했다. 거기에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내까지 왔으니 이 봄은 내게 과분할 정도의 행복을 선물해 주었다.

이제 나도 갈 때가 다가오는지 우리 산천은 물론이거니와 이름 없는 들꽃 한 송이마저 애틋한 사연으로 다가옴을 느낀다. 하기야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이 없고 사연 없는 사람은 없을 테다. 하지만 나 혼자만 좋아하기에는 요즘 세상이 너무 아프다. 그래서 크게 기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아직도 천안함은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잠긴 채 사랑하는 우리의 아들들을 삼키고 있다. 그렇게도 살아서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렸건만, 결국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세상에 잠시만 귀를 기울이면 금방이라도 미칠 것 같은 심정이 든다. 신동엽 시인도 그랬나 보다. ‘미치고 싶었다/4월이 오면 산천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4월이 오면 내 가슴에도/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우리네 조국에도 어느 머언 심저(心底)/ 분명 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아마 대부분 사람 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내 가슴을 아프게 했던 것은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백혈병으로 스러져간 박지연 양의 죽임이다. 그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등학교 다니면서 취업한 18살 앳된 소녀였다. 다달이 월급봉투를 어머니에게 맡기며 미래의 희망에 부풀던 그녀가 입사한지 32개월 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결국은 못다 피운 한 송이 꽃이 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문제는 현재 이 공장에서 작업하는 사람 중 죽거나 투병 중인 사람이 무려 22명으로 알려져 더 큰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은 이렇게 슬픈 사연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에 보면 형 가인에 의해 동생 아벨이 죽임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벨은 억울한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피가 호소함으로 하늘을 움직이게 되었고 결국 아벨은 죄 값을 받고 세상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는 장면이 나온다. 솔직히 진실이 늘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래야 내 속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억울한 약자의 죽음은 반드시 하늘이 기억을 할 것으로 믿는다. 지금 당장은 억한 심정이 들겠지만 하늘은 다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노동이 신성한 것이라고 쉽게 설교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노동자가 아니고 성직자라는 특권층(요즘 한국은 그런 거 같다)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자괴감은 더 커지고 급기야 신의 공평성에 대하여 따지고 싶은 생각이 목울대를 타고 넘나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천망(天網)이 회회(恢恢)하여도 소이불루(疎而不漏)니라’ 는 소박한 명심보감의 한 구절이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커서 성기지만 결코 새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금도 바람 앞에 떨어지는 꽃잎은 꽃비(悲)가 되어 내 가슴을 아프게 들쑤시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의 다름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맞지 싶다. 그래서 당신도 어딘가가 그렇게 아팠던 것이다.

데스크  -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