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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과 춤추다강향림 수필가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4.07.10 11:30
  • 댓글 8

미술관에 가면 여행하는 기분이다. 언어가 주는 사유 못지않게 나는 그림이 던지는 이미지를 욕망한다. 전남 도립미술관 전시 문구가 날 잡아당긴다. 언어에 민감해서인가.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라는 문구에 이끌린다. 문득 욕조에서 즐긴 와인의 잔향이 떠오른다. 향기는 오감을 건드리고 나는 물결의 애무에 꿈을 좇는다. 망고 과즙은 상상을 빨아들이기에 충분하리라.

입구에 도슨트 설명 시간대가 보인다. 해설 시간이 30분이나 지났다. 차라리 다행이라 여긴다. 설명을 들으면 굳어진 틀 안에 갇힌다. 감상하고 나름의 생각을 펼치는 게 낫다.

눈앞의 실체와 상상이 만나 작가를 가늠하는 방식이 나으리라. 날 반긴 건 전시장 유리관 속 라텍스 가면이다. 입체적이라 섬뜩하다. 어쩌면 욕조에서 망고를 먹는 건 그로테스크하리라. 가면은 외국 남자인데 전시 벽에 걸린 작가와 비슷하다. 그가 나야, 가면의 입에서 물이 떨어진다. 해설사는 필요 없다고 그가 나에게 속삭인다. 그의 머리카락이 촉수처럼 뻗어 내 입술을 더듬는다. 내 얼굴에 가면이 들어온다. 가자, 갈 길이 멀어. 내가 아닌 그가 몰아친다. 손에는 서류 가방이 들린다.

뒤쪽 대형 목탄화에 검은 나무들과 사람들이 손짓한다. 사람들과 떨어져 나무 뒤에 선 소년이 울상이다. 저 아이는 곧 집으로 돌아가야 하거든. 언제나 아쉬워해. 다시 반복되는 일상인데 두려워해. 그림 아래 손글씨가 춤춘다. 일기를 끄적이다 관뒀나, 짧고 길지 않은 문장들이다. 나는 저런 영감들을 지하에 보관해.

그가 중요한 걸 정리한다며 걸음을 서두른다. 천정까지 닿은 선인장에 다가가 손을 대니 문이 열린다. 지하로 내려가니 공간이 나온다. 벽에 방향타 손잡이를 돌리자 금고로 빼곡한 방이다. 그가 서류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금고에 집어넣는다. 그는 아파트로 돌아와 의자에 앉아 쉰다. 갑자기 마룻바닥이 뚫리며 그가 아래로 떨어진다. 떨어진 곳은 침대다. 천장에 빨간 풍선들이 달렸다. 구석에 그와 똑같이 생긴 남자랑 눈이 마주친다. 구석의 남자가 망설이지 않고 그를 권총으로 쏜다.

빨간 모자를 쓰고 남자는 문을 나가 자동차를 몬다. 이건 내가 작업실에서 목재와 판지로 만든 자동차야. 남자가 시장 가판대에서 멈춘다. 뒤져봐, 열쇠를 찾아야 해.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있거든. 과일과 채소를 뒤지던 그는 당근 열쇠를 발견한다. 산에 올라가 잠긴 해치 문을 당근 열쇠로 연다. 계단으로 된 터널을 통해 연구소에 이른다. 기계를 달래가며 뭔가를 만든다. 빨간 풍선이다. 풍선은 회로를 타고 익숙하게 침대가 있는 천장으로 간다.

이제 너, 나 다시 제 위치로 돌아가야 해. 남자가 바다에 안겼나, 바다가 남자를 데려갔나. 바닷속 남자가 땅 위를 걷듯 움직인다. 남자는 의식하지 않고 무표정으로 삶과 죽음을 오간다. 끝나지 않는 삶을 반복하며 시시포스처럼 순응하리라. 바닷속 남자가 스크린에서 나오는 영상이 화면을 채운다. 이곳은 현실인가, 가상인가. 내가 만난 가면은 그인가 남자인가. 우주 맞은편 또 다른 나도 미술관에 앉았겠지. 바닷물이 입술에 닿으니 짭조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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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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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양로 2024-07-13 14:19:46

    ㅎ 하나의 그림속에 고런맛이 있다니 작가님의 상상 세계를 표현하심이 부럽습니다 ㅎ
    저도 망고를 좋아하는데 어디서 먹는냐가 !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삭제

    • ㅅㅁ 2024-07-11 13:17:01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삭제

      • 김경숙 2024-07-10 23:02:14

        작가님 글을 통해 미술관 전시를 보는듯 하네요
        미술에는 아는게 별로 없어 어렵게 느껴지는데
        표현을 잘하셨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삭제

        • catherine 2024-07-10 22:38:44

          나도 미술관에 가 있는 느낌입니다.그림의 의미가 이렇게 넓고 깊다니요.....   삭제

          • 미미미 2024-07-10 21:52:09

            시간이 안돼서 미술관 다녀오지 못하지만
            작가님 글에서 이미 미술관 관람했네요~   삭제

            • 김숙희 2024-07-10 15:46:29

              지금 미술관에 직접 관람하는 기분이 드네요.
              주말에 주변 미술관에 가보렵니다.   삭제

              • 김경화 2024-07-10 15:40:36

                작가님 사랑합니다.
                가면을 춤추다를 읽고 미술관에 관람해야겠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삭제

                • Lynn Kim 2024-07-10 14:57:16

                  작가님의 글 속에서
                  찐한 와인도 느껴보고
                  짭쪼름한 바닷물도 느껴져요^^

                  힐링하고 갑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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