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가 도착했다는 핸드폰 문자가 울린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아무것도 없다. 전에 살던 사택으로 간 게 분명하다. 사택 짐들은 이사한 이 집으로 몽땅 옮긴 뒤다. 사택은 통째로 비웠으나 아직 주소는 변경 전이다. 내가 택배도 찾을 겸 이전 사택으로 간다. 간 김에 도시가스도 마무리하려 미리 연락을 넣는다. 일을 마치고 관리사무소에 열쇠만 넘겨주면 된다. 집 안 물건을 다 빼냈는데도 필름을 되감은 듯 아직도 내겐 위치가 선명하다. 물건뿐 아니라 집안에서 들리던 일상의 소리까지 내 발자국을 따라다닌다.

결혼 후 이사한 횟수가 다섯 손가락 중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으레 이삿날 짐을 빼고 곧바로 새집으로 들어가는 순서다. 돌아보지 않은 게 아니라 그럴 짬이 없던 탓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짐을 뺀 시간적인 여유가 넉넉하다. 도시가스 기사님이 나가고 이 방 저 방 둘러본다.

현관이며 아이들 방, 부엌, 베란다까지 내 눈에 담는다. 여러 공간이 자리했고 뭔가 채우며 토해낸 순간을 이 집은 기억하겠지. 나는 방마다 밴 체취를 찾으려 킁킁댄다. 누군가의 주인이던 방은 빠져버린 물건과 함께 사라지고 얼굴을 잃어버린 장소가 된다. 채 떼지 않은 커튼 아래로 뒹구는 나사 하나가 존재를 외치듯 눈을 부릅뜬다.

내 코끝이 시큰거린다. 각각의 방에서 겪은 소소한 일상과 사람들의 모습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 쪼개진 틈에서 내가 뱉어낸 감정의 찌꺼기들이 뭉치고 흩어져 오래된 지층처럼 암팡지게 공간을 압박한다. 그때 깨닫는다. 물건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 공허한 울림만이 자리한 건 아니라는 걸. 물건을 들어내고 비워낸 공간에는 인사로 마무리해야 할 집에 대한 예의가 남는다.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연다. 잿빛 바다가 몰고 온 짠 갯비린내가 목구멍을 타고 흐른다. 섬이 하나 박힌 나만의 방이자 액자다. 몇 개의 방이 있지만 내 유일한 쉼터는 바다가 보이는 이 방이다. 꼭대기 층에서 바라보는 바다와의 눈 맞춤은 감탄사를 일으킨다. 나는 사계절 다양한 꼴로 갈아입는 풍경에 밤낮 안 가리고 물멍에 젖는다. 집이 사람을 받아들이듯 바다도 자연에 맞춘 건데, 매번 다른 바다의 모습에 나는 휩쓸린다. 바다는 감당하기 힘든 무의식적 욕망을 담은 나의 방어기제다. 나는 나만의 방에서 가라앉고 떠오르기를 반복하며 낯선 것을 받아들이려 버둥댄다.

“집아, 고마워. 지켜주고 받아줘서. 뒤에 올 사람이랑도 잘 살아.”
빈 집안 우두커니 서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내가 낯설다. 나는 두 손을 가슴에 그러모으고 눈감는다. 벽과 천정을 부딪치는 말의 진동에 나는 힘이 풀리고 두려움이 몰려온다. 내 목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흩어진다. 집에 건네는 인사다. 누군가에게 이렇듯 떨리는 마음을 전해본 적이 있던가.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불쑥 뛰쳐나온 게 분명하다. 
살아가면서 이별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힘들게 버텨가며 인정하기 싫어할 뿐이다. 내가 욕망하는 동식물, 머물던 모든 자리도 이별을 예상하고 살아가는 것이리라. 안녕이 그리 아쉬운가. 현관문을 잠그고 택배로 온 선물 상자를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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