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새벽 7시. 별량면에서, 월등면에서, 여수에서 올라 온 유족 어르신들은 광양유족회가 마련해 준 버스를 타기 위해 광양읍 전남도립미술관 주차장에 모였다. 팔순을 넘긴 고령의 유족들이 이날 가는 곳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기자회견장이었다. 7시에 출발한 버스는 11시 30분쯤 국회에 도착했다.

지난 1월 10일, 여순사건진상보고서작성기획단이 우편향, 국민비하 막말 발언, 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것에 대해 ‘역사 앞에 죄 짓지 말고 작성기획단을 해체하라’며 전남동부 여순10·19유족, 10·19범국민연대, 순천YMCA 등 30명과 함께 국회와 여순사건위원회 긴급기자회견을 한지 두어달만이다. 이번 국회 기자회견은 우편향 비전문가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이 보고서 내용에 제14연대무장봉기를 ‘반란’으로, ‘진압’을 ‘토벌’로, ‘민간인협력자’를 ‘민간인가담자’로 바꾸고, 여순사건을 공산주의적 혁명달성 운운 하는 등 이념 편향적인 표현을 서슴없이 하며 역사를 왜곡. 날조하려는 시도를 규탄하기 위해서다. 

유족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유족들과 함께하며 모든 집회와 기자회견을 이끌어 준 여순10.19범국민연대 박소정 대표는 진상보고서작성기획단의 만행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했다. 유족들을 생각하며 따뜻한 생강차를 끓여 보온병에 담고 어르신들이 차안에서 드실 수 있도록 간식을 챙겨왔다. 광양10.19연구회 김양임 회장은 바쁜 일정을 미룬 채 ‘머리라도 깍겠다’는 심정으로 오늘 기자회견에 함께 하겠다고 했다. 유족들은 고마워했다. 국회에 도착하자 서동용 의원이 유족들을 사무실로 안내하며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그들의 부모, 삼촌, 고모, 이모, 조카, 이웃은 국가가 저지른 무차별 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들일 뿐이다. 70여년만에 여순사건특별법이 만들어져서 이제는 원을 풀 수 있으려나 했다. 

그런데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은 피해자들을 ‘민간인가담자’로 만들고, 그 자식들을 ‘반란군의 자식’들로 낙인 찍으려 하고 있다. 여수,순천,광양 등 전라도를 반란지역, 빨갱이의 도시로 몰아가려고 하고 있다. 70여년, 통한의 세월을 숨죽여 살아 온,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은 유족들은 울분을 터트린다.

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험한 세상 외롭고 모진 고생을 하며 살아왔는데, 특별법이 제정되어서 이제는 한을 풀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으려나 했는데 다시 암울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깊은 한숨만 내쉴 뿐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이용현 유족은 멀리 지방에서 새벽같이 올라 온 유족들을 반기며 일을 제치고 한달음에 달려와 유족들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교도관을 지냈다는 이용현 유족은 ‘죽임을 당할 만한 특별한 행위도 하지 않은 작은아버지 두 분’과 ‘동네 아이의 시신을 거뒀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 평생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다가 돌아가셨다는 아버지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기자회견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유족 어르신들은 무거운 마음을 누르며 새벽에 출발했던 그 장소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는 광양 세풍에 사시는 허정태 유족께서 꼭 저녁을 먹여서 보내고 싶다하시며 한사코 유족들을 광양읍 참게메기매운탕 맛집으로 모시고 갔다. 유족어르신들과 함께 한 하루, 서로 아픔을 나누고,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주름진 어르신들의 모습이 뭉클하고 따뜻하고 또 아팠다. 역사를 지우고 날조하려는 현 정권의 무지한 역사의식, 그 행태에 울화가 치민다.

특별법 제정에 앞장서고, 그동안 여순사건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특별법의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던 서동용 의원도 이번 총선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컷 오프 위기를 겪고 다시 경선을 준비하고 있다. 서 의원은 그 동안 유족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살뜰히 챙겨주려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유족들은 그를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하며 고마워했었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김영신 기자  g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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