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시개비(皆是皆非)는 각각의 주장이 모두 옳으면서도 또 동시에 그르기도 하다는 뜻이다. 사람이 상대적인 존재이다 보니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같은 문제를 보고도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이유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비유가 바로 이 고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난 후 설명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코를 만진 어떤 이는 “코끼리는 밧줄처럼 길게 생겼다”고 말하고 배를 만진 사람은 “마치 단단한 벽돌과 같다”고 말하고 다리를 만진 사람은 “기둥과 같이 생겼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의 주장이 모두 틀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옳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문제가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시개비를 조금만 더 생각하면 지금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즉,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는 흑백논리보다, 내가 옳으면 너도 옳고, 네가 그르면 나도 그르다는 생각을 가질 때 소통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는 이분법적인 문법으로는 반목과 질시가 끊임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을 봉합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애적’ 오류에 빠져 끝없는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것을 볼 수 있다. 

도대체 나만 옳다는 절대적 신념을 주장하는 자체부터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자세로는 어떤 갈등도 쉽게 해결하지 못한다. 인간이 완벽하지 못한 이상 이런 문제는 계속되게 마련이지만, 그나마 갈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서로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법이다. 물론 ‘역지사지’의 입장을 가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문제는 나는 역지사지를 말한다고 하는데, 상대방은 자꾸만 억지(?)사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흔히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편향적 사고가 그렇다.  설령 내가 하는 말이 100% 옳은 것 같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그 옳음도 결국은 코끼리 몸의 일부분을 만진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생각만 해도 소통을 하는 데 있어서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은데, 글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입장을 견지할지 의문이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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