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자주 운명을 이야기한다. 내 삶은 왜 이럴까, 남들은 다 잘 사는데 나만 왜 이렇듯 고달플까를 되뇌며 괴로워한다. 불행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도록 기도한다. 내게 주어진 고난을 회피하고자 노력도 한다. 하다가 안 되면 조상에게 욕을 퍼붓는다. 그렇다고 불운이 피해질까.

필자가 중학생일 때다. 그즈음 필자는 얼굴이 곱상했다. 동네 어른들이 장난삼아 까까머리에 보자기를 씌워 밖으로 내보내곤 했다. 그런 날 본 누군가는 여자애인 줄 알았다. 그 탓에 학교에서도 장난기 심한 반 애들이 필자를 잘 건드렸다. 그즈음 필자는 성질이 날카로웠다. 날 건드는 애들과 싸움질을 마다하지 않았다. 남녀를 불문하고 미인들의 성질이 까칠한 게 이해되기도 한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교문 앞은 6차선 도로였다. 그때는 차가 별로 없었다. 차가 다니기보다는 날마다 길거리 장이 서는 곳이었다. 하교하는 학생들, 쭈그려 앉아 물건 파는 아주머니들, 뭔가를 사러 나선 주민들이 뒤엉켜 북적거렸다. 필자가 교문을 나서는데 어떤 녀석이 발로 차고 도망갔다. 순간 필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발치에는 상인들이 좌판에 쓰던 주먹만 한 돌멩이가 보였다. 녀석은 6차선 길을 건너려 대각선으로 뛰었다. 옆에서 다른 애들이 지켜보며 웃고 떠들었다. 필자가 돌멩이를 주워 던졌다. 달려가는 녀석의 등짝을 맞추려는 시도였다.

아뿔싸, 돌멩이가 손에서 미끄러지며 하늘 높이 떠올랐다. 직사포로 돌멩이를 쐈는데 의도와는 달리 돌멩이가 곡사포 탄두처럼 허공으로 떠버렸다. 방향도 녀석이 뛰어가는 쪽과는 조금 어긋나 보였다. 만일 돌멩이가 시장바닥 누군가에게 떨어진다면 중상이 틀림없었다. 그때 필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돌멩이가 포물선을 그으며 어긋나게 날아가는데 녀석이 그 방향으로 뛰어가는 것이었다. 돌멩이가 땅에 내려꽂힐 듯한 예상 지점 쪽으로 죽어라 도망쳤다. 드디어 땅에 내리꽂히는 돌멩이와 녀석이 만났다. 돌멩이는 정확하게 녀석의 등 복판에 명중했다. 녀석은 몸을 비틀거리더니 시장바닥 좌판에 쓰러져버렸다. 돌멩이가 다른 사람에게 맞지 않아 필자는 마음을 놓았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다른 애들이 탄성을 질렀다. 이후로는 아무도 곱상한 필자를 건들지 않았다.

그때를 떠올리면 아찔하다. 그 돌멩이에 엉뚱한 사람이 맞았다면 난리가 날 일이다. 그 사건의 충격이 강해 반세기가 지난 지금껏 잊지 못한다. 그때부터 필자는 운명에 대해 생각했다. 운명이 누굴 찾아오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운명을 향해 뛰어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사색의 줄기를 놓지 못한 것이다. 돌멩이가 어긋나 날아가는데도 애써 뛰어가 맞아버린 상황이 단순한 기억을 넘어 필자에겐 철학적으로 발효된 것이다.

지금껏 지구상에서 인간으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 개체 수가 대략 1,000억~1,200억 명이라 한다. 지금도 80억 명 남짓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별의별 일이 다 있으리라. 지금 누군가의 삶도 그들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운명이라는 게 그들의 생활과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래서 운명이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는 생을 위해 앞으로 나간다. 스스로 운명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쓰는 것이다. 날아가는 돌멩이를 향해 질주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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