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갑진년(甲辰年)으로 청룡(靑龍)의 해이다. 대망(大望)의 2024년이 힘찬 용트림의 기운으로 시작되었다. 모두들 힘들었던 지난해를 회상하고는 저마다 새해 아침에 가정과 직장에 좋은 일들이 가득하여 웃음꽃이 가득하기를 소망하였을 것 같다.

특별히 용의 해이다 보니 웬지모를 복이  덤으로  오지나 않을까 하고서는 무심코 지나쳤던 로또방에 들려  예전에는 사지 않던 복권을 서너장 사고서는 기분좋게 호주머니에 넣었을 것도 같다. 굳이 로또가 아니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는 총총 걸음에 예쁘게 웃으며 아빠를 반겨줄 딸애 생각에 붕어빵 한 봉지를 사가지고 대문을 들어서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로또 대박을 꿈꾸는 이나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바라는 이들이 단지 용의 해라는 이유만으로 올해가 기대되는 것은 아닐게다. 아마도 새해가 되면은 무엇인가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작고 소박한 소망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다. 상서롭고 신비하며 신성시 되기도 한다. 우리들이 자주 사용하면서도 의미감이 좀 떨어지는 상서(祥瑞)롭다 라는 말은 ''복(福)되고 길(吉)한 일이 일어날 조짐이 있다''는 것이 사전적인 의미인데 쉽게 말하면 ''행운(幸運)의'' 라는 의미로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이라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용에 대한 이렇게 좋은 의미가 있고 신비하기까지 하니 아주 오래전부터 임금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동물이라고 상상하여 만들어 지다보니 고대 왕조시대에  하늘 아래 가장 높은 존재인 임금에 비유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그래서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존재인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 임금이 앉아서 정사(政事)를 보던 자리를 용상(龍床)이라고 하였다. 절대권력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인듯 하다. 용의 이미지가 그만큼 절대적이고 확실한 것이다.

  그러면 용루(龍淚)는 무엇일까? 생소한 말이다. 용루(龍淚)라는 말은 있을 수는 있어도 예민한 표현이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어 뜻 그대로 용의 눈물로 해석하면 된다. 없는 말을 굳이 만들어서 물어 보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기도 하겠지만 짚고 넘어가야할 이유가 있다. 왜, 용루라는 말이 없는 것일까? 왜냐하면 임금의 눈물이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나랏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의미이기에 사용할 수가 없다. 하지만 여러 임금들이 용루(龍淚)를 흘렸을 것이다. 절대권력의 자리에 있으면 모든것이 최상인데도 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았지만 쉽게 그러지 못 했을 것이다. 

   이십수년 전에 모방송에서  대하사극으로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가 방송되었다. 조선의 건국군주인 이성계의 이야기이다.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과의 갈등과 권력의 암투가 주된 내용인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임금이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는 이야기이다. 그 임금이 바로 이성계였다. 무슨 사건이 있어 시대의 영웅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했을까? 한 나라가 세워짐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피바람에 대한 슬픔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한평생을 전장(戰場)을 누렸던 장군이기에 웬만한 사건으로는 조금의 동요도 없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위화도 회군으로 시작된 내전에서 최영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서는 실권을 잡았고 급기야 이방원이 정몽주를 살해함으로 고려왕조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뒤로 커다란 저항 없이 왕조교체가 이루어졌다. 태조의 바램대로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였다. 태조에게는 모두 8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본 부인에게서 6명의 아들을, 둘째 부인에게서 2명의 아들을 보았다. 아들이 많다보니 세자 책봉이 문제가 되었고 계비 강씨의 입김으로 막내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였다. 아무런 한 일도 없는 막내를 세자로 세우다니 좀 심한 것도 같다. 하물며 개국에 있어서 가장 나쁜 일을 도맡아 한 방원은 어떠 했을까? 

  급기야 방원을 비롯한 첫째 부인의 아들들이 사병을 동원해 이복 형제인 방석ㆍ방번과 정도전 세력을 제거했다. 이것이 1차 왕자의 난이다. 태조 이성계는 살아 생전에 세 아들을 잃었다. 장남인 방우는 병으로 죽어서 별 문제가 없는데 방석과 방번은 첫째 부인의 아들들에 의하여 죽었다. 그래서 용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것도 피눈물을 흘렸을것 같다. 남이 세자를 죽였다면 원수라고 갚았겠지만 자기 자식들이 이복아우들을 죽였다. 그러니 더욱 어찌 해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누구를 원망하였을까? 아들 이방원을 원망했을 것같다. 죽도록 미워도 했을 것 같다. 그래서 태조는 용상을 내주고 함흥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마 태조는 죽을 때까지 방원을 용서하지 않았을 것 같다.

   태조는 울어야만 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하는데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병이나 불의 사고가 아닌 계획된 죽음이었다면? 그 자식의 죽음에 자신이 연루되었다면 또 어떠할까?  어찌보면은 예상되었던 사건으로 자신 때문에 자식이 죽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용상의 자리를 두고서 형제간의 권력 싸움에 두 아들이 죽은 것이다. 물론 본인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하고서는 끝까지 태종만 미워하였다. 하지만 평생을 장군으로 살았고 고대 중국 왕조사와 고려왕조사를 잘 아는 그가 어찌 권력으로 인한 암투를 몰랐을까?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였을 때도, 용상을 차지 였을 때도, 막내를 무모하게 세자에 책봉하였을 때도 어느 정도는 각오했을 터고 걱정도 조금은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였고 만들어 놓은 그 절대 권력이 자기의 자식에게 칼을 겨눌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 절대권력이 자신으로 하여금 아들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을 것이다. 절대권력이 자신은 지켜 주었지만 두 아들과 증손자 단종을 지키지는 못했다. 권력암투로 인한 비극으로 유명한것이 삼촌이 조카를 죽인 단종애사(端宗哀史)이다. 형제끼리 칼을 겨누고, 삼촌이 조카를 죽이고, 부모와 자식이 원수가 되게 만드는 것이 권력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이씨 조선왕조에서 용루를 가장 많이 흘렸을 왕은 아마도 영조(英祖)이었을 듯하다. 극심한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긴 비극일 수도 있었겠지만 어찌 됐건 본인이 자신의 아들을 죽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는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죽음으로 조선 왕조사에서 있었던 가장 비극적인 사건중의 하나이다. 무슨 이유에서 그랬을지는 역사만 안다.  영조임금은 살아 생전에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가장 불쌍한 임금이었다. 무엇을 후회하였을까? 누구를 원망했을까?  아비를 살려달라고 울며 애원하는 어린 손자 정조의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슨 잘못을 했던 간에 자기 아들인데 어찌 아비로서 그마음이 찢어지지 않았을까? 

  우리들이 부러워하는 권력의 어두운 뒷면을 보여주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다들 들어서 잘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과는 큰 상관이 없기에 깊이 따져보지 않고 역사 속의 이야기로만 여긴다. 사실, 그들의 이야기이지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도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것 같다. 올해가 총선이 있는 해이다 보니 벌써부터 뉴스가 뜨겁고 기자들이 바쁘다. 자고나면 무슨 핫한 뉴스가 나온다. 그래서일까? 겨울인데도 그다지 추운 것 같지 않다. 온갖 정치에 관한 이러쿵 저러쿵하는 말들이 쉬지 않고 흘러나온다. 너(여)는 어떻고 나(야)는 어떻고.

니들이 틀려서 우리는 제금(분가 : 分家) 살란다.  너도나도 다들 맞는 소리 같다. 국민을 위해서란다.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사심 없이 조국과 국민을 위해서 우리보다 똑똑한 그들이 힘써 일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개천에서 용되려고 하다가 용의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천하의 이성계도 난세를 마치고 새왕조를 열었지만 그 길을 피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국회의원이랴! 국민을 위한 순수한 욕심에 나선다면 좋으련만 어디 그게 쉬울까? 어쨌든 그 길은 그들의 몫이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자. 정치인이 권력과 명예를 내세우면 우리는 평범함속의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내세워 보자. 결코 우리들이 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평범함이 얼마나 잘난 것 인지를 알아야 한다. 마음껏 웃을 수가 있고,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눈치 볼 필요가 없는 나만의 공간이 있는데  용상이 부럽겠는가? 그래도 유명한 이들이 조금은 부러울 것이다. 그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평범함 속의 소소한 일상을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 우리를 부러워할 것이다. 사실 옛날에 왕족으로 태어난 어떤 이들은 평민인 백성을 부러워 하였다고도 한다. 그러니 기죽지 말고 이번 선거에서 오직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있는 한 표를 힘껏 찍어 보자. 그리고 잘 하라고 응원도 해주자. 올해는 우리가 갑이다. 우리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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