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국회의사당, 중구 여수순천10·19사건위원회 등 두 곳에서 기자회견 
비전문가, 극우 편향적인 인사로 구성된 기획단을 당장 해체하라 성토 
기획단을 올바로 세우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
 

고령의 유족과 유족회 관계자, 10·19범국민연대, 순천YMCA관계자 등 30명을 태운 가나관광 버스는 지난 10일 새벽 다섯시 반 순천 팔마체육관 주차장에서 출발했다. 추운 겨울 날 새벽, 이슬도 채 잠이 깨지 않은 시각, 새벽닭 한번 울 때부터 준비하고 기다렸다는 순천 한 유족어르신의 우스개 소리에 버스 안 사람들은 피곤한 기색을 쫓기라도 하듯 즐겁게 웃었다.

이날 이 버스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기자회견장과 중구 정안빌딩 여수순천10·19사건위원회가 있는 서울을 향해 새벽 주행을 시작했다. 동트기 전 어둠이 가장 짙다고 했던가, 새벽 고속도로위에 짙게 깔린 어둠처럼 유족들의 마음도 밝지는 않아 보였다. 75년의 한, 특별법이 시행되고 이제는 좀 풀어보나 했더니 지금 여순사건의 시계는 거꾸로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인정을 안 하려고 기를 쓰는 것인지,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사과하고 남은 과정을 찬찬히 진행해나가면 되는 것을, 여순사건의 마무리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진상보고서 작성기획단의 구성원들의 많은 인사들이 극우, 편향적인 인사들로 구성되어 한국 현대사의 큰 아픔의 역사를 지우고, 그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많은 희생자들과 그 유족을 두 번 죽이는 일을 밀실에서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유족들은 분노한다. 유족들은 잘 보이지도 않은 어두운 창밖을 주시하며 지난 전남도청 기자회견장에서 폭도 취급을 받으며 건물을 폐쇄해 화장실도 맘대로 갈 수 없었던 서러운 기억에 걱정 어린 한숨을 내뱉는 듯 했다. 

박소정 10·19범국민연대 대표와 최경필 사무처장 등은 “진상보고서 작성기획단의 밀실야합 구성은 숨기려는 자와 드러내려는 우리들과의 싸움이다. 짧은 시간에 끝날 것 같지 않다. 유족님들 힘내시라”며  마이크를 잡고 오늘 상경의 의미와 일정에 대해 설명했다.

서장수 여수유족회장은 “애기섬에서 아버지가 수장됐다. 이 억울함을 명명백백하게 알리라는 메시지를 받은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상경 소감을 밝혔다. 손정식 순천 유족회원은 “조사서 기획단의 면면을 살펴보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주도자이거나 국민을 개돼지라고 표현한 인사들이다. 역사인식이 매우 잘못된, 극우인사들로 구성돼있다. 기필코 배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유족을 태운 버스는 여산과 안성휴게소를 두 번 들른 후 4시간 반 만에 국회의사당에 도착했다.

서동용 의원을 비롯한 소병철, 김회재 등 특별법을 발의한 지역구 의원들이 기자회견장이 있는 소통관 로비에 나와서 유족들을 반겼다. 서울유족회원 20여명도 함께했다. 기자회견장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9명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김석 순천YMCA사무총장의 사회로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세 명의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발언을 한 후 여수,순천,광양,구례,고흥 유족회 대표와 10·19범국민연대 관계자들이 회견문을 낭독했다. 이어 여수순천10·19사건위원회가 있는 중구 정안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이어갔다.

유족들과 시민연대는 “시행령 규정에는 기획단의 구성 및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위원장이 정한다고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순사건위원회 위원장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여순특별법 시행령 제13조 제7항에 명시된 규정을 무시하고 밀실에서 독단적으로 기획단원 10명을 선임했다”며 “위촉직으로 임명된 허만호 씨등 9명의 단원을 향해 “기획단원의 전제 조건인 여순사건과 관련한 어떤 학식이 있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밝혀라. 만약 활동을 하지 않았거나 비전문가라면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이어 “비전문가가 작성한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수많은 오류와 왜곡으로 점철될 것이 뻔하다. 독단적이고 밀실야합으로 구성된 여순사건진상보고서 작성기획단을 즉각 해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기자회견과 집회 사회를 맡은 김석 순천YMCA사무총장은 “역사적 사실을 숨기려는 의도에 분노가 인다. 진상보고서가 잘 씌어져야 배·보상이 이뤄질 것이고, 빨갱이의 자식이 아니라 봉기군의 자식이라는 명예를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10·19전국유족회 이형용 대변인은 “75년만에 만들어진 기획단이 이렇게 환영받지 못해서야 되겠느냐, 우리는 좌·우 치우치지 않는다. 단지 억울하게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죽음, 숭고한 희생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 뿐이다”며 “기획단을 올바로 세우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5명의 대표단이 중구 정안빌딩 여수순천10·19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위촉장 수여를 막고 대치하는 동안 건물 앞 인도 한쪽에서는 유족들이 추위를 무릅쓰고 비전문·극우 인사 등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역사 앞에 죄를 짓지 말라’고 외쳤다.         

김영신 기자  g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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