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민간인이 많이 희생됐다는 설명에 학생들 놀라기도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서 일어난 여순사건은 광양에서도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아픈 이야기다. 70여년이 지났지만 더 늦기 전에 누군가는 지나간 역사적 사실을 알려야 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것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광양시의 지원으로 광양여순10.19연구회가 ‘찾아가는 여순교육’을 진행, 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현대사의 비극 여순사건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 15일, 광양중학교 2학년 120여명이 여순사건 여수지역 답사를 다녀왔다. 버스 5대에 나눠 탄 학생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핸드폰을 들여다보기도 했지만 해설사 선생님의 해설이 시작되자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려 하루사이에 기온이 뚝 떨어져 추운 날씨였지만 학생들은 여순사건의 A부터 Z까지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알려주고 싶어 하는 해설사 선생님의 깊은 뜻을 알았는지 시간이 갈수록 집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만성리 학살지에서 토벌군의 잔혹한 집단학살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한 학생은 “너무 잔인하다. 사람을 왜 그렇게 죽였나요? 너무 슬프다”라고 말했다.

■14연대 주둔지 터
첫 목적지는 여수 신월동 14연대. 14연대는 여순사건이 시작된 최초의 장소다. 1940년대 이 지역은 봉양, 물구미, 신근 등 3개 마을 239가구 1,339명이 사는 반농반어를 하며 풍족한 생활을 하던 큰 마을이었으나 1942년 8월경 일제가 여수항공기지, 해군202부대를 만들고 철도를 놓기 위해 3개 마을을 철거했다. 
지금은 썰물 때 드러나는 수상활주로만 남아있다. 전남동부지역에서 끌려 온 근로보국대와 순천중학교 학생들이 일제의 기지 조성 공사에 동원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정문을 통과하면 무기고로 추정되는 지하벙커와 굴뚝이 있어 군수공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동포의 가슴에 총을 겨눌 수 없다’며 제주4.3출동을 거부한 14연대는 이곳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잉구부 전투지 
‘잉구부’전투지는 여수시 연등동 좌수영로에 있다. 잉구부는 연등동 중앙을 관통하는 도로의 옛 이름으로 ‘왼쪽으로 구부러져 있다’하여 ‘왼’을 ‘잉’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곳은 1948년 10월 23일 송호성 토벌대 전투사령관이 지방 좌익들에게 기습을 당해 장갑차에서 떨어져 고막이 터지는 등 크게 다치고 토벌군을 후퇴시킨 곳이다. 토벌 작전 이후 여수시가지는 3일간 불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토벌군과 봉기군의 첫 전투가 벌어졌다.

■이순신 광장(인민대회장) 인근
봉기군과 좌익계열은 1948년 10월 20일 오후 3시경 중앙동 진남관 앞 작은 공터(광장)에서 약 3~5천여명의 시민이 모인 가운데 여수군 인민대회를 열었다. 이용기,유목윤,박채영,문성휘, 김귀영 등 5명의 의장단을 선출하고 여수인민위원회 결의문 6개항을 채택하고 대회를 끝낸 후 오후 5시경부터 시가행진을 했다. 이후 21일 여수시의 각 면 단위 지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인민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중앙초등학교(당시 이름은 종산국민학교)·여수여자고등학교(당시 여수여자중학교)
중앙초등학교, 당시 이름은 종산초등학교 였다. 이 곳은 여수경찰서가 가까이에 있어서 토벌군 부대가 주둔하면서 협력자를 색출한 곳이다. (*이 학교 위에 있는 여수여자고, 당시 여수여자중학교는 부산 제5연대 1개 대대 대대장 김종원 대위가 주둔하고 있어 여순사건 당시 가장 많은 학살이 일어난 곳이다. 백두산 호랑이라고 불렸다는 김종원은 긴 일본 칼을 옆에 차고 다녔고, 그 칼로 살해를 서슴없이 자행했다고도 알려졌다)
중앙초등학교에서는 여수지역 전체에서 색출된 봉기군과 협력자를 포승줄로 묶어 교실에 수용하였고 또 오동도에 수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협력자 색출 과정에서 즉석에서 처형되어 학교 뒤편에 있는 밭에다 매장하였으며 밤 시간에 트럭에 싣고 가서 만성리 학살지와  오동도에서 처형했다. 
토벌군에게 빼앗겼던 여수중앙초등학교는 1951년 9월 1일에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마래터널
1926년 말굽형식으로 시공되어 현재까지 차량이 오가는 국내 유일의 자연 암반터널이다. 1930년 광여선 철도가 개통할 당시 철도 터널로 만들었다가 여수역에서 터널로 올라오는 길이 경사가 심해서 1935년 전라선 개통에 맞춰 약간 아래에다 철도터널을 만들고 마래 2터널은 군사용도로 사용되었다. 중국에서 끌려온 징용노동자들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여순10.19사건 당시 만성리 학살지와 형제묘로 끌려간 많은 민간인 희생자들이 걸어갔던 ‘황천길’이기도 했던 이 터널은 2004년 12월 31일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총 길이 640m, 폭 4.5m, 높이 4.5m로 다섯 군데 여유공간을 두어 차량이 서로 교차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만성리 학살지
부역혐의자로 잡혀있던 종산초등학교 수용자 중 수백여명의 민간인과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을 이곳에 끌고 와서 집단 학살한 곳이다. 토벌군은 1948.11월 초순부터 종산국민학교에 수용되어있던 부역혐의자 일부를 이곳에서 학살하고 마래2터널을 만들고 도로를 만들면서 커다란 웅덩이가 된 협곡과 같은 이곳에 시신을 던져 넣은 후 흙, 모래, 돌로 암매장 했다. 이곳에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정확한 희생자수를 알수가 없다고 한다.

■만성리 형제묘 
1948년 10월 26일 새벽부터 인근 주민들은 서국민학교와 공설운동장, 동초등학교 등에 모여 부역혐의 심사를 받았다. 지까다비 신발을 신고 있는 사람, 총을 만진 흔적이 있는 사람, 군용속옷을 입고 있는 사람, 우익인물이나 경찰의 ‘손가락 총’에 의해 좌익이나 적극 가담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즉결 처형됐다. 

이곳에서 색출된 125명에 대한 처형이 만성리 마래 2터널 너머 언덕에서 토벌군에게 총살되어 장작더미위에서 태워졌다. 5명씩 묶어서 총살한후 지게꾼들이 시내에서 가지고 온 장작을 이용해서 장작과 사람 5명을 겹겹이 쌓아 5층으로 다섯 묶음을 만든 후 태웠다. 3일간이나 불에 탔으며 그 냄새가 사방에 퍼져 그 앞을 지나다니기가 힘들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김영신 기자  g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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