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전후 우리의 어린 시절은 모두가 가난했다. 하루 한끼쯤은 물 한 바가지로 때우며 지낸 가정도 있었다. 거지도 많았다. 환부(患部)를 가리고 다니며, 걸식(乞食)하는 나환자 거지(이곳 사람들은 문둥이라 불렀다)도 많아 이들이 지나가면 놀라서 피해버렸다.광양사람들은 거지를 동낭치라 불렀다. 거지는 사회적인 낙오자의 생활수단이며, 직업이었다. 이들은 몸이 불편한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우리 세대들에게는 친근한 이웃과 같은 이미지로 자주 회자(膾炙) 되곤 한다. 국민 소득 3만 불 시대의 지금 세대들에게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다른 나라의 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풍요는 한나절이면 나락(奈落)으로 곤두박질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전쟁이다. 광양읍에 살았던 많은 거지들 중에서 이름있는 동낭치는 세사람이 있다. 가장 많이 알려진 이는 “영달”이었다. 그의 성씨는 장 씨였으나 장영달이라고 불러 주는 사람은 없었다. 한쪽 다리가 장애가 있어 뒤뚱거리며 걸었다. 자르지 않은 머리털은 산발을 하여 무서운 느낌을 주었다. 애들이 울면 “영달이 온다”라고 하면 울음을 끊이고 숨어버렸다. 주변의 상가(喪家)나 잔칫집에는 반드시 나타났다.

구걸을 하고 다닐 때는 바가지 같은 큰 그릇을 귀 높이로 받쳐 들고 밝은 표정으로 “낭치 왔소”라고 기죽지 않은 큰소리로 외쳐 댔다고 한다. 거지지만, 광양사람다운 기백이 엿보였다. 그가 살았던 곳은 광양읍 성황마을과 개성마을의 경계지점으로 당시는 통속지명이 영달이 골목이었다. 살던 집은 한디통시(집밖 농장등에 있는 화장실)였다. 꽤 넓은 공간에는 볼일을 보는 변기는 맨땅 위에 밟고 앉을 수 있는 큰 돌 2개가 있었고 일을 본 즉시 재나 유기물과 섞어 한쪽 공간에 쌓아두는 퇴비 더미가 있다. 그 나머지 공간에 볏짚을 깔고 짚 가마니를 덮고 잠을 잤다. 어느 날 외면(外面)에 살던 여자분이 영달이 골목을 지나다가 소변이 급하게 되었다. 근동(近洞)의 사람들은 영달이 골목을 지날 때는 영달이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나 이 여자분은 아무것도 모르고 영달이 집으로 들어갔다. 볼일을 보고서야 한쪽에 짚 가마니를 덮고 자고 있는 영달이를 보고 기겁(氣怯)을 하며 줄행랑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거지였지만, 표정이 밝고 남을 해치지 않아 지역 사람들은 내치지 않고 이웃으로 함께했다. 또 한 사람 빙고등의 “여샌”이 있었다. 성씨는 여 씨지만, 이름은 확인이 불가능했다.

“여샌”이라고 부른 것은 일본식으로 성 뒤에“상”자를 붙여 존칭으로 사용하던 말이 해방되고 “샌”자로 변해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그는 앉은뱅이였다. 엉덩이에 가죽 받침을 하고 몸을 질질 끌고 다녔다. 때로는 수레를 타고 다녔다. 상갓집이나 제삿집은 물론 잔칫집에는 빠짐없이 나타났다. 일정표를 갖고 다녔다. 그는 주변의 동낭치들의 리더였다. 5.16정부때로 짐작되는데 빙고등에 부랑자 수용시설을 짓고 관내 대부분의 부랑자가 수용 관리 되었다. 광양중학교와 인접해 있어 수업을 방해하는 소란스러운 일이 자주 발생하였다. 

행정기관에서는 민간인 관리 책임자를 지정하였다. 읍사람들은 그를 동낭치 대장이라고 했고 골약 출신 박○철이란 분이 담당해주었다.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팀은 매일 시장 주변에서 구걸행위를 하고 다녔던 봉사와 앉은뱅이가 있었다. 두 사람은 항상 같이 다녔다. 앉은뱅이는 네모판자에 회전 바퀴가 달린 대차에 앉아 나무 막대기를 앞선 봉사와 맞잡고 방향을 지시하며 끌고 가게 했다.

6.25이후 백운산의 빨치산들의 시신이 화신광장에 전시되었다. 봉사와 앉은뱅이는 시신의 피 묻은 겉옷(군복)을 벗겨 읍내를 흐르는 개울에서 빨아 가져가곤 하였다. 이외에도 생각나는 동낭치는 도열이 그리고 만떼(만세를 이렇게 외쳐대고 다님), 여성인 영순네가 있었다. 우리가 살림을 잘못 살면 다음 세대에서 이런 사람을 또 볼 수 있다. (이야기를 전해주신 분 : 김준성, 강순행, 김동헌, 이돈구, 정진기, 박지윤, 백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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