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별하게 가리는 음식이 없다. 혐오 식품이 아니면 무난하게 먹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보다는 아들들 입맛을 선호하는 편이다. 아이들이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보통 하루에 주방에서 서너 시간을 보냈다. 집밥이 그렇듯 매번 되돌이표 식단이다.

집밥이 지겨우면 가끔은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대신했다. 하지만 이젠 따지고 보면 아이들이 내 밥을 먹을 날도 얼마 안 남았다. 나는 아이들이 집에 오는 시간만큼은 한 끼라도 만들어 주려고 주방에서 움직인다. 기숙사에서 배달 음식에 찌든 아이들 건강이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학기 종강 후 집에 있는 아들에게 먹고 싶은 메뉴를 물었다.

“치킨이 진리지!”
“닭들이 너만 보면 떨겠다야. 삼계탕 어때?”
“윽! 닭을 물에 넣는 건 최악이야. 기름에 넣어야 제맛.”
오랜만에 삼계탕을 끓이려 장까지 봤는데 아들들은 치킨을 외쳐댔다. 배달 앱으로 치킨을 주문하고 어질러놓은 삼계탕 재료들을 대충 정리했다. 삼계용 닭고기를 보며 누군가 떠올랐다. 서울 S 병원에서 만난 동창이었다.

몇 년 전, 나는 내 몸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심하게 앓았다. 입원하라는 의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애들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내 몸 하나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니 아이들도 생각 밖으로 물러나게 됐다. 지방 병원에서 응급차에 실려 대도시 병원으로 옮겨졌다. 태어난 이후 장기 입원한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출산할 때도 하루 만에 퇴원하던 내가 무려 서너 달을 머물렀다.

응급실에서 하룻밤을 기다려 겨우 4인실로 옮겨졌다. 1~2인실 자리가 없어 기다리기로 했다. 황달로 가려움증이 심해 수면제를 먹고도 겨우 한두 시간 잠이 들었다. 잠들기 어려운데 옆 침상의 환자들 소리에 내 신경은 더 곤두섰다. 나보다 대여섯 살 위인 옆자리 환자는 췌장암으로 밤마다 딸과 통화하며 흐느꼈다. 건너편 할아버지는 밤마다 기침을 숨넘어가게 뱉어냈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가벼운 증상의 환자였다.

숨죽이는 울음과 가뿐 기침 소리에 나는 밤을 꼴딱 새우기 일쑤였다. 수면제나 수면 주사는 쪽잠을 허락할 뿐이었다. 어차피 수면에 문제가 없다 해도 내게 잠은 사치였다. 상황은 불편하나 누구를 탓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매일 햇귀가 비치면 몽롱한 상태로 간호사가 들고 온 체중계에 올라가곤 했다. 잴 때마다 500그램씩 몸무게가 줄었다. 병원 밥을 억지로 떠야 할 만큼 내 입맛은 바닥이었다. 

그러던 중 초등 동창이 찾아왔다. 졸업 앨범과 스냅 사진들마다 내 뒤편 어딘가에 어슬렁거리던 개구쟁이 친구였다. 수십 년 만에 만났다. 동창회에서 소식을 들었다고, 자기는 서울에 산다고 했다. 동창은 야윈 내 모습을 보더니 간호사에게 지하 식당 삼계탕을 먹여도 되냐 물었다. 동창은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식당으로 달려가 삼계탕 2인분을 가져왔다. 

뚝배기 채 가져온 삼계탕을 나는 반이나 해치웠다. 가족이 아닌 뜻밖의 친구에게 위로받은 식사였다. 다음날 내 몸무게는 처음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삼계탕 친구가 궁금하다. 나는 내 밥 먹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들들을 바라본다. 치킨을 먹이고 싶지 않다. 나를 살린 삼계탕을 준비하려 싱크대 앞으로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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