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민사33부(부장판사 구회근, 판사 황성미·허익수)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적법한 절차 없이 집단 살해된 충남지역 민간인 희생자 유족에게 ‘피고는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지난 2022년 12월 14일 서울중앙법원 제1심 판결에서 패소한 데 따른 것으로 서울고등법원 민사33부(이하 재판부)는 서울중앙법원의 제1심 판결 패소를 취소하고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제1심 판결을 바꾼 이번 판결은 ‘충남지역 부역혐의 민간인 희생사건’으로 당진, 홍성, 서산, 예산군 등 충남지역은 1950년 7월경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점령되었다가 1950년 9월 28일 국군에 의해 수복,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8월 4일 대통령 긴급명령인 ‘비상시향토방위령’을 제정하여 즉시 시행하면서 대한청년단을 중심으로 각 지역별로 치안대(자위대)를 조직하여 북한군 및 부역혐의자를 체포하고 향토를 방위할 것을 명하였다.

충남 당진군 순성면에도 한국전쟁 전부터 대한청년단 등 우익단체에서 활동을 한 사람들과 낙오 군인, 전직 경찰 그리고 인민군 점령기에 희생된 우익인사들의 유족들로 치안대가 조직되었다. 치안대는 경찰과 협조하여 부역혐의가 있는 주민들을 색출·연행·구금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을 뿐 아니라, 피고 소속 군인, 경찰과 함께 일부 주민들을 좌익활동 혐의·부역 혐의 등으로 재판 등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집단적으로 살해하는 행위에도 가담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충남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을 받고, 신청인 조사, 참고인 조사, 자료 조사, 현장 조사 등을 실시한 다음, 2010년 6월 15일, 충남 당진군, 홍성군, 서산군, 예산군에서 군경에 의한 불법적 민간인 집단 살해로 인하여 151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사실을 확인 또는 추정하는 내용의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의 진실규명 결정으로, 희생자 이OO를 충남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의 희생자로 확인하였으며, 이OO은 마을회관으로 연행되어 그날 밤 매를 맞고 살해됐다. 이OO의 유족은 순성면 치안대 15명을 1951년 서산 검찰에 고발했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조사과정에서 이OO 외에도 김OO, 김OO, 김OO,김OO, 김OO, 강OO, 강OO가 충남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의 희생자로 거명했다. 재판부는 희생자 유무를 숙고하여 판단하고 “피고소속 공무원인 군인, 경찰 및 피고의 공무를 위탁받아 이에 종사한 치안대, 청년단원 등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OO을 살해함으로써 이OO와 그 유족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였다.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그 소속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하여 이OO와 유족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이어 “이 사건과 같이 민간인이 국가권력에 의해 집단적이고 조직적으로 희생된 사건의 경우, 사안의 성격상 제3의 목격자나 관련 기록 등 객관적인 증거가 존재하기 어렵다. 

또한 이러한 사건들은 사회적·정치적 혼란기에 발생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재에는 그로부터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하였기에 관련 증거가 소실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이러한 사안의 특수성 때문에, 원고들에게 구체적인 사실관계의 증명을 이보다 더 엄격히 요구할 경우 그 증명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정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희생자 본인의 위자료 8천만원, 그 배우자의 위자료 4천만원, 그 부모와 자녀의 위자료를 각 8백만원, 그 형제자매의 위자료를 4백만으로 각각 정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재판과정에서 발생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33부의 이번 판결은 ‘일본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며 위안부피해할머니에게 2억원을 보상하라’ 최근 판결과 함께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억울하게 스러져간 민간인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두 번째 판결로 눈길을 끈다. 이 판결 소식을 접한 여순사건광양유족회 최광철 사무국장은 “충남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은 갑작스런 해방이후 이념의 각축장이 되었던 국가의 정부수립 초기에 행해진 위법한 공권력 행사다”며 “인명살상이 불법으로 자행됐기에 그런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최종 배상책임은 국가에서 져야 한다는 법리를 다시 한 번 확인 시켜 준 판결이라 생각한다. 여순사건 희생자가 많은 광양에서도 큰 관심을 가질만한 판결이다”고 말했다.

김영신 기자  g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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