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그 양반은 반주를 너무 좋아한다. 매일 찾는다. 하루라도 빼먹으면 좋으련만 다른것은 까먹고 가끔 빼 먹어도 이것만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러길 바람은 나의 욕심일 뿐이다. 반주라는 게 노래할 때 곁들여 주는 피아노 연주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다. 그 반주가 아니고 밥먹을 때 반찬처럼 먹는 술 한잔이다. 반찬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제 안 먹은 것도 아닌데 오늘도 찾는다. 그리고는 퍼 마신다. 한 두잔 걸치고 기분 좋으면 노래도 한 곡 걸친다. 한두 잔 마시는 걸 가지고 퍼 마신다 하니 좀 너무한다고 하겠지만 내 말을 들어 보면 일리가 있다 할 것이다.

하루도 안 빠지고 지난 30여 년을 날마다 한두 잔씩 반주를 했으면 퍼 마신 것이지 그냥 술을 마신다함이 아닌 것 같다. 사람은 술처럼 고약하지 않는데 그놈의 술이 웬수다. 어쩌다 내가 훅해서 지금까지 데리고 사는데 어찌 보면 매일 반주를 걸치는 그이보다 그걸 꾹 참고 여지 껏 살아온 내가 더 독하다. 성질날 때면 나도 확 대병 하나 걸쳐 볼까 하는 생각도 간혹 드는데 그러면 내가 지는 것 같아서 그것도 마음뿐이다.

옛말에 부모복 없는 년은 신랑복도 없다던데 혹시 내가 그런가 하여 곰곰이 따져보니 그 말이 맞는것도 같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머지 두 개의 복은 충분하다. 형제복과 자식복이다.

위로 언니 아래로 동생해서 세 자매인데 둘다 나만큼 잘났다. 언니는 울산 근처에서 돼지국밥과 밀면을 파는 식당을 하고 동생은 지 신랑과 간판집을 한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다들 장사가 어렵다 하는데 그래도 밥은 먹고 산다 하니 다행이다. 그래도 가끔은 우는소리를 곧잘 한다. 손님이 없다고, 장사가 좀 될만하니 옆에 식당이 들어선다고 하소연을 하곤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병가지상사라 하듯이 상가지 상사인 것을. 죽고 사는 것도 아닌데 그까짓 손님 좀 없다고 기죽을 것은 없지 않은가. 인생만사 새옹지마라 하지 않은가. 여름이 있으면 겨울도 있고. 겨울이 있어야 따스한 정도 그리운 법이다.

엄니가 어린시절 빨리 돌아가셔서 우리 세 자매는 마음고생이 어느 누구보다 많았다. 엄마가 없으면 아버지라도 의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지나간 세월 속의 고생을 지금에 와서 굳이 되짚어 무엇 하겠는가 마는 그래도 간혹 미어져 오는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과 외로움으로 인한 고생들은 정말 쉽지 않은 사춘기 소녀의 고난 그 자체였다. 가정환경이 평범하지 못하니 고등학교 중퇴 후 부산으로 올라 갔고 직장 생활 중에 우리 아저씨를 만났다.

첫인상이야 특별한 것이 없는 그저 평범한 오빠였는데 내게 잘해주고 심성이 순한것 같아 어느새 가까워 졌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때 좀 더 따져봐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지금은 많이 아쉽지만 다시 물릴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데리고 사는데 수리도 잘 안된다. 반품도 안 되지 수리도 안 되니 정말로 진퇴양난이었다. 그래도 말이나 잘 들으면 그나마 큰 손해지만 감수하고 살겠는데 어디 말이나 잘듣나.

위에서 말했듯이 반주에 가끔 폭주도 하고 잠도 길에서 잔다. 밤늦게 귀가 시간이 지나도 집에 오질 않아 찾아 나서면 대문 밖에서 대자로 자고있다. 식당을 해보니 그럭저럭 장사가 좀 되는가 싶더니 우리 아저씨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이때다 싶어 손님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한다. 그러니 술값 받기도 그렇다. 큰 재미도 없을뿐더러 도와주기는 커녕 은근 슬쩍 민폐만 끼치는 우리 그이 덕에 장사도 별로라 접어야 했다.

술만 빼면 그다지 잘난 부분은 없어도 못난 것도 없는 성품이 괜찮은 사람인데 술이 문제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도무지 통하질 않는다. 대답이라도 그러마하면 그나마 좀 덜 밉을텐데 자기도 나름대로 그럴싸한 변명만 늘어 놓는다. 혈액순환에 좋다나. 그놈의 변명은 30여 년을 넘게 들어 왔다. 거기다 어느 유명한 의사의 말이 그렇다고 넉살 좋게 웃으며 태연스레이 한술 더 뜬다.

매일 먹는 밥처럼 마시는 반주도 쉽지 않은데 간혹 이벤트가 있으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회사에서의 회식, 친구들과의 동창회, 가족간의 회식, 그리고 경조사로 인한 방문 등이 그런 것이다. 집에서 눈치 보며 엉거주춤 마시는 반주보다 명분도 분위기도 완벽한 행사장에서의 한 병은 얼마나 꿀맛이겠는가. 그럴 때면 나도 무슨 잔소리를 하겠는가. 그냥 고삐 풀린 망아지가 봄날 푸른 목장에서 뛰노는 것처럼 마냥 즐거워한다. 하긴 힘든 직장생활에서 그렇게 고생하는데 그런 낙이라도 있어야 할 듯하다. 이런 이해도 안 해본 것도 아닌데 정년 퇴직 하고서도 그러니 문제가 될 조짐도 보인다.

세월 앞에 장사없고 한 해가 옛적 이라는데 어디 젊을때처럼 그렇게 생각대로 건강하겠는가. 나이기 들면 없던 병도 하나 둘 생기는데 본인도 조금은 걱정이 되는지 건강검진에 진지하다. 얼마 전에 전당뇨 경고를 받고서는 반주를 줄인다 하는데 과연 그게 쉽게 될지는 지켜 봐야한다. 지난 40여년을 소주국 막걸리 백성으로 살아 왔는데 그까짓 경고성 의사샘 말한마디에 쉽게 국적을 포기할까. 어디 당뇨나 간경화만 찾아오겠는가. 알콜성 치매도 찾아올 수 있는데 말이다.

그래도 그나마 아주 다행인 것은 우리 아저씨는 운전을 못한다. 그럴 수 있는 이유가 너무나 확실하다. 넘들 다 가지고 있는 운전 면허증 하나 없다는 것이 현대인의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면허증 없이 평생을 살겠는가 마는 그도 그럴 이유가 있다. 선천성 난시라서 운전을 할 만큼의 시력이 나오질 않는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런 경우를 천우신조라고 하는가 보다. 시력이 좋아서 차라도 끌고 다닌다면 내가 제 명에 못 살았을 테니 말이다. 가끔 길바닥을 침대삼아 자는 양반이 차라도 끌고 다닌다면 무슨 일이 일어 날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래도 어떨 때는 짠하다. 일년에 한 두번씩 친정 가족식을 할 때다. 언니와 동생네 가족이 크리스챤 가정이라서 도무지 술을 모른다. 그러니 모처럼 식사자리에 끝내 주는 안주가 있는데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 본인이 직접 마트에가서 술 한 병을 챙긴다. 술이란 게 분위기와 술 친구가 잘 어우러 져야 맛있는 게 당연한데 눈치는 안 보지만 혼자 자작(自酌)하며 외로이 마신다. 어디 형부와 제부가 술을 마셔 봐야지 술잔에 자연스레이 술을 부어 줄 것인데 제부는 술잔에 술을 따라주는 것도 어색해 하는 양반이다.

허구헌날 서예와 시ㆍ수필을 쓴다고 방구석에 처박혀 사는 백면서생이다. 그런 양반이 어찌 그 위험한 간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간혹 시나 수필을 톡에 올린 것을 보니 글 재주는 있는 듯 하고 서예는 필체가 제법이다. 몇일 전에는 근교의 어느 초등학교의 가훈쓰기 행사에 한글 궁체 선생님으로 갔다 한다. 집에서 혼자 쓰다 여러 초3 애들이 보는 가운데서 쓰니 손이 떨려서 혼났다 한다.

우리집 양반이 술만 좀 줄이면 세상에 괜찮은 양반인데 언젠가는 내바램이 이루어 질 줄 믿는다. 서울서 직장 다니는 아들도 종종 안부전화로 지 아부지가 요즘도 술을 많이 하는지 묻는다. 사실 우리 아들은 나의 희망이다. 부모복 없는 내가 남편이 속을 썩이니 자식밖에 무슨 낙이 있었겠나.

그래서 그런지 울아들은 지 아부지 술 땜에 지 엄마가 속상해 하는것을 하도 많이 봐서인지 여지껏 술ㆍ담배를 모른다. 반면 교사로 삼은 것이다. 공부도 곧 잘해서 엘지ㆍ 삼성 두 곳에 합격하고서는 엘지를 택해서 갔다. 머리야 다 비슷할 건데 지 아부지의 끈기를 닮았는지 공부를 끈기있게 했다. 중학교 때부터 전교에서 거의 5%를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고 대학도 4년 장학생으로 나왔다. 아마도 머리는 날 닮았고 끈기는 지 아부지를 닮았나 보다. 그 반대였으면 특별한 것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내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내가 고등학교 중퇴라도 공부는 제법 했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집을 돌아보지 않는 힘겨운 사춘기를 보내지 않고 평범한 가정에서 컸다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반면에 동생은 다행히 힘든 가정환경을 이기고 간호사가 되었고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울 언니도 공부를 제법했다. 시집을 잘 갔으면 식당을 안 하고 무슨 패션이나 문인화 쪽의 예술샘 이 되었을 터인데 재능이 아깝다. 간호조무사, 요양 보호사, 양장 기능사 그리고 잘나가는 식당 사장이니 명예 조리사를 가진바나 다름없다. 평생 전업주부로 살다가 횟집과 돼지국밥ㆍ밀면집을 멋지게 하고 있다. 대박은 아니지만 중박이다. 식당 경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경쟁이 치열한 요식업계에서 밥먹고 산다는것은 참으로 대단하다.그것도 네 식구가 함께하는 가족식당으로 말이다.

이 정도이면 아들에게 있는 공부머리는 확실히 나를 닮은 게 맞는 듯하다. 아니라고 우리 그양반은 반론을 제기 못 한다. 제부가 그런다.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울아들이 제일 공부 잘한다고. 그 범위는 초중고 동창들과 동네 선후배나 이리저리 아는 지인들 중에서 일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립서비스는 아닌듯 해서 기분이 좋다.

아들이 잘났다는데 기분 안 좋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잘난 아들은 나라 아들이거나 사돈 이들이라고 하던데 정말로 그런 것 같다. 장가가더니 변했다. 그 전에는 지 엄마가 1순위였는데 그 뒤로 2순위로 밀렸다. 지 색시가 1순위다. 그거야 당연지사 이지만 서운함은 조금 든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은데 장가 간지 언제인데 손주도 안데리고 온다. 지들 놀기 바쁘다고 이핑계 저핑계로 둘러만 댄다. 인생은 타이밍이요 인명은 재천인데 아직 젊다고 태평이다. 인생사가 계산대로만 되어진다면 세상 어느 누가 행복하지 않을까.

시골로 내려온 지 어느덧 5년이 지났다. 바쁜 도시 보다는 여유 있는 이곳이 좋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지 좀 챙겨주라고 대문 앞에서 보채는 아롱ㆍ다롱(애완견)의 짖는 소리가 평화로운 시골의 시작을 알린다. 대문 밖 고목의 가지에서 우는 새소리도 있는듯 없는듯 하게 하루의 아침을 노래한다. 오늘은 동네 면민 체육대회가 마을 초등학교에서 열린다. 우리집 양반이 제일 기다리던 그날이다. 운동이나 사람 만나서 노는 게 좋아서가 아니라 이틈에 명분 있게 한 잔 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잔소리 하면 되려 나한테 맏받아 큰소리로 호통친다. 이렇게 좋은 날에 그냥 넘어 가는 게 이상한거라고. 사실 맞는 말이다.

이래서 한 잔 저래서 한 잔. 술좋아 하는 사람은 그다지 악한데가 없는것 같은데 술이 그러한 상황을 만드는것 같다. 내가 아는 고등학교 어느 샘은 체육샘인데 술 빼고는 어디 나무랄데가 없는 샘이셨다. 운동을 잘해도 너무 막걸리를 많이 드셔서 위암수술 두번, 간암 수술을 한 번 받았다 한다. 사람이 술을 마신게 이니라 술이 사람을 마신 것이다. 사람이 술을 택한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택한 것이다. 너는 내 것이라고.

이정도 이면 천생연분인 것 같다. 평생 서로를 버리지 않고서 동고동락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회자정리라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어야 한다. 만남의 반가움도 헤어짐의 그리움에서 생기는 법이다. 지금까지 잘 지내 왔으니 이제는 좀 내려놓고 그리움에 어쩌다 한 잔하면 더 운치가 있을 듯하다. 평생을 모셨던 주님(酒님)을 진짜 주님(主님 : 예수님)으로 바꿔 보면 어떨까.

인생이 훨씬 진지하고 활기가 넘칠듯하다. 이제는 갈아 탈 때도 된 듯하다. 환갑이 지난 지 언제고 낼모레가 칠순이다. 며칠 더 지나면 멸치국 마시고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 찬송가 중에서) 잘 건너 가려면 酒님이 아닌 主님으로 갈아 타야 한다. 이제 그때가 된 것도 같다. 반주도 찬송가 반주로 바꾸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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