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요리가 즐겁지 않다. 주방 일이 싫은데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대학 학과를 정할 무렵 인기 끌던 드라마 덕분이었다. 거기서 하얀 가운에 식단표를 들고 감독하던 영양사라는 직업을 처음 접했다. 나는 의사나 연구원만 흰 가운을 입는 줄 알았는데, 화면에 비친 영양사라는 직업이 매력적이었다. 어린 마음에 흰 가운 입은 여배우의 모습에 꽂혀버렸다. 흰 가운 자체가 내겐 환상이었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정신과 의사가 꿈이었다. 하지만 중, 고교를 지나며 꿈과 별개로 내 현실적인 성적은 따라오지 못했다. 드라마에서 본 영양사는 꿈과 현실을 좁히기에 딱 맞았다. 흰 가운을 걸치고 한쪽 가슴에 서류를 든 채 우아한 미소만 지으면 끝인 줄 알았다. 얼마나 얕은 생각인가. 그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학교 선생님이 최고라 생각했다. 의사가 아니면 학교 선생님이 되려고 교육학과에도 원서를 냈다.

나는 교육학과와 식품영양학과에 지원해 둘 다 합격했다. 추위 속 교육학과 면접을 치르며 나는 담에 걸려 한동안 편하게 자지 못했다. 한 달 만에 체중이 6킬로나 빠졌다. 교육학과를 쉽게 포기한 것은 드라마 속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내 오랜 바램을 제친 얄팍한 겉멋의 승리였다.

대학 졸업 후 드라마에서처럼 영양사로 취직했다. 솥뚜껑 선배 여사님들을 관리하는 일, 아침마다 컨베이어 위 도시락 뚜껑을 닫으며 확인하던 음식들은 꿈속까지 나를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음식하면 친정에서 엄마와 차린 제사상과 명절 음식도 빼놓지 못한다. 자리가 비좁을 만큼 올라오던 음식 가짓수는 일과를 마치고 누운 친정엄마의 고된 신음과 맞먹었다.

엄마는 혼자 힘으로 아빠 몫까지 바깥 일을 했다. 나는 철이 들고서는 오빠들 도시락을 챙기며 종종 엄마의 자리를 맡았다. 그때부터가 내 주방 역사의 시작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다. 선택이지 필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의 무거운 어깨가 나에게 현실적인 무게로 닿았다.

그 삶의 무게는 내게 그림자처럼 붙었다. 내가 종손 남자를 데려오자 친정엄마는 끈질기게 반대했다. 당신의 무게를 딸에게는 얹고 싶지 않은 간절한 심정이었으리라. 철없는 나는 엄마가 지나온 자리를 해낼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엄마가 했으니 만만해 보여 당연하게 여긴 것이다. 정작 그 자리에 나 홀로 서게 되니 막막했다. 엄마라는 그늘이 있어 내가 편하게 지낸 거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종갓집 일은 만만찮았다. 일 년에 명절 빼고 제사만 다섯 번이었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치르는 행사에 음식 준비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연년생을 키우며 장 보는 일에서부터 다듬고 만드는 과정, 어느 것 하나 쉬운 건 없었다. 나에게는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과 명절 요리가 다르지 않았다. 마늘을 넣느냐 빼냐의 차이일 뿐. 집안 행사가 끝나면 내 손은 거칠어지고 갈라져 재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내게 사람 입속으로 끼니를 넣는 일상은 늘 쉽지 않았다. 친정엄마의 따뜻한 밥상을 당연시한 나의 어리석음인가. 엄마의 음식이 내 입에 거저 들어온 적은 없으리라. 나도 아이들에게 뭔가 먹일 때만큼은 손끝이 춤추며 움직인다. 모계 유전자의 힘인가. 이따금 나는 요리가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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