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Saipan)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의 땅을 빼앗고 죄 없는 약자들을 무자비하게 살상하는 전쟁’을 통해 세계 질서가 억지로 유지되어 왔다고나 할까. 대한민국은 70여년전의 그러한 ‘전쟁’으로 인해 여전히 ‘휴전 중’이며, 우리가 평화롭게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지금 이 시간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는 기억되지 않는 ‘억울한 죽음의 향연’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1948년 10월 19일,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아픈 역사 ‘여순10·19’를 기억해야 한다는 취지의 ‘다크투어’ 취재를 위해 여수 등 사건 발생지를 비롯한 관련 장소와 제주4·3 현장·평화기념관 등을 돌아봤다.

그리고 이번 ‘사이판(Saipan)투어’를 통해 ‘대한민국이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것과 70여년전의 6·25전쟁, 제주4·3, 여순10·19 등으로 이어진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픔과 슬픔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도 ‘전쟁’으로 패권을 쥐려는 미국과 일본 등 열강들의 비열한 욕심에서 시작되었음‘을 연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1944년 6월 11일부터 7월 초까지 미국과 일본의 최대 격전지 ‘사이판’ 
사이판은 북마리아나 제도의 가장 큰 섬이자 수도로, 태평양 연안의 인기 있는 휴양관광지이며 미국령이다. 전쟁 당시 사이판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미국은 당시 일본본토를 폭격하는데 가장 가까운 위치라고 여기고 총사령관, 사령관 6명을 파견해 총 7만 1000명의 병력을 편성하고 일본군과 싸웠다. (당시 파견된 미국 사령관 중 ‘랄프 스미스’는 1948년 여순사건 진압을 위해 파견된 인물이기도 하다) 

사이판 주둔 일본군 사령관은 2명이었으며, 당시 사이판에는 일본군을 따라온 많은 일본 민간인들이 살고 있었다. 1944년 7월 미군의 사이판 확보로 일본군은 패했고 양쪽 모두 많은 피해를 낸 가운데 일본군은 대부분 전멸했다. 미군은 이 단 한 개의 작은 섬을 점령하기 위해 13만 8391발의 포탄과 5882개의 조명탄, 4대의 야포에서 29만 1405발의 포를 발사했다. 

새로운 전차까지 등장시켜 위력을 발휘했지만 719대의 상륙함 중 204대가 파괴당했다. 사이판에서 15분 가량 배를 타고 들어가는 마나가하 섬에는 포 제조사의 각인까지 새겨진 일본군의 해안포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태평양의 아름다운 석양이 내려앉는 사이판 해변을 걷다보면 전쟁에 사용됐던 녹이 쓴 무거운 철 구조물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일본인들이 ‘천황폐하 반자이(만세)’를 외치며 몸을 던진 곳 ‘만세절벽’과 자살절벽
사이판 최북단에 있는 이 곳은 영화 ‘빠삐용’으로 알려진 곳으로 일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1944년 7월, 일본군이 대패하자 일본군을 따라와 살던 부녀자와 노인들은 차례로 “반자이(만세)”를 외치며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 사망자는 1,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상당수는 자발적으로 뛰어내리기도 했지만 일본군들의 강요로 뛰어내린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미국의 한 군사보고서는 그날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들 앞에 있는 아이들을 던지거나, 그들의 아이들을 껴안은 부모들은 들쑥날쑥한 바위가 있는 절벽 아래로 뛰어 내렸다. 마피주변을 지나던 순찰함의 사령관은 물위에 떠 있는 수많은 시신 때문에 아주 천천히 지루하게 항해를 해야 했다”라고...

이 곳을 ‘만세절벽’으로 부르게 된 이유다. 사이판은 이 곳에 위령시설을 세워주었고, 자신의 조상들을 기억하고자 많은 일본인들이 이 곳을 찾고 있다고 현지가이드는 설명했다. 만세절벽 뒤편으로 보이는 자살절벽은 일본군 최후 사령부 기지 근처에 있는  해발 249m의 높은 절벽으로 사이판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들이 미군들의 항복 권고에도 불구하고 뛰어내려 자살한 곳이다. 

▶미군 전사자들을 기리는 추모공원 ‘아메리칸 메모리얼 파크’
‘아메리칸 메모리얼 파크’는 사이판 시내 가라판에 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이판을 지키기 위해 희생된 미 해병대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추모공원이다. 축구장 3개크기만한 큰 규모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사망한 미군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비와 사이판 섬의 민간인 희생자 비가 함께 세워져 있다. 방문자센터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공부도 할 수 있어 자녀들과 함께 사이판을 찾는 여행자들은 이곳에 들러 산책도 즐기고 아이들은 체험을 즐긴다. 

▶’남의 것 빼앗아 본 적 없는 선의의 민족 여기 머나먼 타국에 잠들다.’... 한국인 위령탑 
원주민 차모로족을 포함한 인구 5만이 살고 있는 사이판은 울릉도의 1.6배 크기의 작은 섬이다.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낭만적인 휴양지로 꼽히는 이 섬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의해 강제징용 되거나 위안부로 끌려와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수많은 한국인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한 ‘한국인 위령탑’이 있다.

1981년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와 사이판 한인회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고 제2차 세계대전때 저지른 피해에 대한 진상을 조사해 과거사를 자성 복원하고 민족자존자주자립을 다지자’는 뜻으로 세웠다. 전쟁으로 패권을 쥐려는 두 나라 사이에서 ‘남의 것 빼앗아 본 적 없는 선의의 민족 5천여명이 머나먼 타국 ‘사이판 섬’에서 그렇게 기억되고 있다. 위령탑 위의 비둘기가 한국을 가리키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에 가고 싶었던 조상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한다. 

김영신 기자  genews@hanmail.net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