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백석-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울으면
당신이 앞선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볓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백석 저, 『정본 백석 시집』,
문학동네, 2007
섧기만 하구려. 마지막 구절을 계속 읊조린다. 백석의 당신은 누구인가. 그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가볍지 않기를 바 란다. 서러운 마음을 받아줄 대상이 바다뿐이겠는가. 쓸쓸한 마음 다독이며 발길 멈추는 데가 그곳이리라. 그 바다가 춥지 않기를 바랄 뿐. 쇠리쇠리한 윤슬에 그리움이 번진다, 지중지중 걸으며 몌별*을 받아들인다. 인연이란 머물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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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당신을 그리워하며 무덤덤하게 내뱉다가 쏟아낸다. 바다가 두렵다. 바다가 훔쳐 간 얼굴을 떠올려 본다. 내가 13살에 돌아가신 아버지다. 나는 어린 시절 여수 바닷가 작은 섬마을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낚시를 즐겼다. 퇴근하면 바닷가로 낚싯대를 가지고 나갔다. 막둥이인 나는 아버지와 늘 붙어 다녔다. 6월 이맘때쯤이다.
그날은 내가 친구 집에 놀러 가 까무룩 잠들었다. 아버지는 퇴근 후 나를 찾다가 혼자 바닷가로 향했다. 그게 살아있는 아버지와의 마지막이었다. 바닷가 근처 밭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물이 들자 갯바위에 있던 사람이 물속으로 뛰어든 걸 봤단다. 밤새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는 뒷날 그물에 걸려 발견됐다.
나는 모래사장에서 본 아버지를 기억한다. 파리해진 피부에 뻣뻣한 마네킹이 누워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어제까지도 눈 마주치고 웃던 아버지가 차갑게 식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바다가 토해낸 아버지와는 달리 해수면은 눈부시게 반짝였다.
내 안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바다의 모습이 들어있다. 바다를 미워할 수 없다. 짭조름한 바닷바람과 출렁이는 파도 속에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잔향처럼 날 자극한다. 그런 바다 앞에서 나를 다독인다. 밀물과 썰물은 인연이라고. 바다는 차오르고 빠지기를 반복한다. 지금도 일렁이는 나의 바다를 바라보며 백석의 바다를 읊는다.
몌별* 소매를 잡고 헤어진다는 뜻으로, 섭섭히 헤어짐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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