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향림 수필가

환기하려고 베란다 창문을 연다. 아침인데도 창밖이 안개로 뿌옇다. 물방울 틈새조차 허락하지 않은 듯 촘촘하다. 매일 보는 바다 풍경이 사라졌다. 장마가 시작되고 안개가 수시로 주변을 삼킨다. 안개가 유리창에 얼굴을 문지르다 나에게 스며드나 보다. 내 머릿속 잡음도 수증기 속에서 헤맨다. 안개로 뒤덮인 주변은 거대한 솜사탕이다. 나는 들숨과 날숨을 고르며 혀를 날름 내민다. 안개 솜사탕 맛이 밍밍하다. 저 안에 많은 걸 숨겨둔 것 치고는 싱겁다. 아니면 장마로 느슨한 내 몸의 무기력한 반응인가. 안개를 뚫고 친구의 음성이 들린다. ‘마음이 헛헛해.’

나는 평상시 루틴으로 아파트 계단 운동을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 꼭대기 층까지 대여섯 번을 오르면 1시간 정도 걸린다. 남들은 계단 운동이 지루한데 어떻게 하느냐고 나에게 묻는다. 똑같은 구조의 계단이지만 층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쌍둥이가 처음엔 구분이 안 되지만 볼수록 차이를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 지루함이란 그날 내 기분에 달린 문제다. 며칠간 분주해진 일상으로 몸과 마음이 꽤 지쳤다. 머릿속이 얽혀 복잡할 때는 단순한 계단 오르기만큼 좋은 게 없다. 지하 계단을 오르는데 출입문 쪽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온다. 아파트 주변에서 종종 보던 길고양이다. 낮고 쉰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오르는 날 따른다. 계단 사이 바닥에 누워 몸을 좌우로 비비다 내가 움직이면 뒤쫓는다. 그런 모습이 짠하고 귀여워 동영상과 사진을 찍는다. 

나는 고양이가 원래 있던 지하로 보내려 엘리베이터를 세운다. 문이 열리고 고양이가 들어가자 엘리베이터를 닫는다. 이제 갔겠지, 엘리베이터 숫자를 보던 나는 당황했다. 내가 B1 버튼을 누르지 않은 거다.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6층이고 고양이는 갇혀버렸다. 서둘러 바깥 버튼을 누르자 놀란 고양이가 뛰쳐나온다.

내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움직이니 고양이도 들어온다. 나는 고양이를 지하로 데려간다. 내가 다시 계단을 오르니 고양이가 앞지른다. 현관 출입구 1층까지 앞서 올라간 고양이가 계단에서 멈춘다. 몇 초간 움직이지 않는다. 고양이의 검은 실루엣이 내 눈을 붙든다. 네 발 더럽고 굶주린 고양이가 주는 뒷모습에 내 복잡한 마음이 머물다 흩어진다. 길고양이의 삶도 사람과 다르지 않구나. 그 감정은 나와 고양이 사이에 감돈다. 

헛헛하다던 친구에게 고양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낸다. 고양이 혹은 안개 탓인지 내 기분이 이상하다고 메시지도 띄운다. 개냥이네, 친구가 문자로 웃는다. 고양이보다 동영상에 잠깐 비취는 내가 정겹다는 친구 글이 되돌아온다. 
계단 후미진 구석까지 킁킁대는 안개가 나를 감싼다. 계단 난간을 비비적대며 현관문으로 빠져나가는 고양이의 꼬리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창밖 어디선가 다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바닷가 수면 위로 물보라가 인다. 바람에 쓸려 아파트까지 올라오나 보다. 창밖에 는개가 내린다.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저작권자 © 광양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