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그리는 여자가 있다. 그의 손길이 한번 지나가면 칙칙한 벽들이 환골탈태한다. 그리고 그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은 탄성을 지른다. 특히 그의 대작을 볼 수 있는 곳 중의 한 곳은 창덕아파트 들어가는 길목이다. 중마동에서 창덕 굴다리로 오다 보면 대형 벽에 그가 그린 아름다운 그림이 오감을 즐겁게 한다. 이처럼 벽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일러 그래피티 아티스트라 부른다. 요즘 얼굴 없는 화가로 유명한 뱅크시도 그렇고 작고한 바스키아도 그래피아티스트였다.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모두가 벽에 그림을 그려 유명한 화가들이다. 

이은미 화가 역시 출중한 실력으로 쇠락한 마을에 그림으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화가가 꿈이었던 그는 성인이 돼서야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가난했던 살림이 화가의 길을 늦추었던 것.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마음으로 수없이 그림을 그려왔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그는 그동안 접어둔 꿈의 날개를 펼쳤다. 그가 선택한 것은 수채화. 그의 수채화를 감상하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수채화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절묘한 물감의 번짐은 그만의 장기다. 감각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노력으로 가능한 일도 있지만, 수채화의 번짐 기법은 노력만으로 안 된다. 느낌과 감각이 뒤따라야만 감동을 주는 수채화를 완성할 수 있다. 지난 주에는 또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우고 순절한 강희보 강희열 의병장을 기리는 쌍의사 마을 입구 담벼락에 그들의 용감한 전투 모습을 재현해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시간이 촉박해서 단순하게 그려야만 한 것이 아쉬웠다. 이틀만에 이런 역사화를 그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의병장 그림 만큼은 꼭 내 손으로 그리고 싶어서 담벼락 주인에게 몇 번이고 전화를 드려 허락을 받았다”고. 그동안 그렸던 모든 벽화 그림이 그렇지만, 특히 강희보 강희열 의병장을 그리는 데는 몇 배로 더  신경을  썼다고 했다. 왜냐하면 두 형제가 품은 내면의 용기를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 “솔직히 말해  벽화 그림을 우습게 보는 사람도 있는데, 누가 어떤 자세로 그리는가에 따라 명화도 될 수 있고 또 그저 그런 그림이 될 수도 있다” 며“나는 어떤 그림을 그리던 내 혼을 담아 그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광양시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벽화가 드물 정도로 많은 그림을 그려왔다. “벽화도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다. 그중에 창덕 굴다리와 쌍의사 벽화가 그렇다”고. 그는 벽화도 한 폭의 아름다운 명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 벽화를 그리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물감 배합이 중요하다고,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작가가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해서는 물감 배합이 가장 중요하다. 벽화는 화선지와 다르기 때문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써야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벽에 밑그림을 스케치한 후 몇 번 옅은 색으로 칠한 다음 점점 더 진하게 물감을 입혀가며 완벽에 이를 때까지 수천번 붓질을 한다. “어떨 때는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온 몸이 아프다.
 

하지만 완성된 내 그림을 보고 마을 주민들이 기뻐할 땐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이 솟는다”며 웃었다. 이어 “작은 금액으로 이틀 만에 청소와 미장은 물론 그림까지 완성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수고한 것에 비해 아쉬움이 크기는 하지만 미장과 청소는 봉사하는 셈 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화가는 그림으로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만큼 앞으로도 더 좋은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예술의 향기를 선물하도록 하겠다”고 말덧붙였다.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다시 뼁기통을 챙겨 다음 벽화 그릴 장소로 이동을 했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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