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루브르 박물관 지하 2층에 세계지도가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를 확인하기 위해 지도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강대국 틈새에 위치한 사우스코리아(south korea)를 발견했다. 그런데 오른쪽 동해 바다가 ‘japan sea(일본해)’로 표기되어있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윗주머니의 볼펜으로 손이 가서 ‘japan sea’를 두 줄로 지워 버리고 ‘korea sea’로 고쳐 버렸다. 가슴속 흥분을 잠시 가라앉히고 볼펜을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경비원처럼 보이는 직원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나는 순간 ‘아 큰일이 났구나, 내가 처벌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 일행들한테 피해가 간다면 이 일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짧은 시간에 수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이왕에 이렇게 된 것 오히려 표정을 태연하게 하고 관람을 하였다. 직원은 세계지도와 옆에 전시된 그림을 꼼꼼히 살펴 보았지만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고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나는 더욱 태연하게 눈을 마주치지 않고 옆의 그림을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그 순간이 불과 1-2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모골이 섬��한 1시간 이상의 긴장된 시간으로 느껴졌다. 직원은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자리를 떠났다. 2005년 6월, 나는 한국신지식농업인회 중앙회 사무총장으로 당시 농림수산축산부 주관 유럽 연수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만약 그때 그 직원에게 루브르 박물관 시설물에 손을 대고 글자를 지워 버린 것이 발각되었다면 농림부 담당 사무관은 물론 우리 일행들은 큰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젊은 패기인 것 처럼 돌출행동을 했는데 세월이 한참 지난 오늘에 생각해 보니 쓴웃음이 지어지는 당돌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230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의 박물관이다. 본래 프랑스의 왕궁이였던 것을 나폴레옹 1세가 박물관으로 개장을 하였다. 403개의 전시실, 총 350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 세계 최대규모의 박물관이다.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는 회화, 조각 등의 다양한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나리자의 미소’ ‘비너스’ 나폴레옹 대관식‘등의 명작을 만나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프랑스 파리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찾아낸 박병선(여, 1929-2011)박사 이시다. 박병선 박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세계인들에게 알리고 국가적 보물인 ’조선왕조 의궤‘가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일평생을 바쳐 애쓰신 분이다.

한국에서 촉망받는 역사학자인 그녀가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좀 더 체계적인 역사 공부를 하기 위해서이다. 소르본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 프랑스 국립고등교육기관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67년부터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야겠다는 다짐 때문이였다. 박병선박사는 도서관 사서로 자청하여 근무하면서 틈틈이 도서관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어느 날 도서관 귀퉁이,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먼지가 쌓여 있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바로 ’직지심체요절‘이었다.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렸지만 학계에서는 세계최초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여사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를 증명해 보이기로 하였다. 그리고 대장간에 들려 금속활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공부해 가며 지우개와 감자로 활자를 직접 만들어 찍어 보며 5년 동안의 연구 끝에 1972년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유네스코 세계도서의 해 기념 도서전시회’에 ‘직지심체요절’을 특별전시하고 전문가들의 검증을 통해 1377년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이 독일의 쿠텐베르크가 인쇄했던 금속활자본 보다 78년이나 앞선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기어코 입증시켰다.

또한 1975년에는 병인양요(1866년)때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당했던 ‘외규장각 의궤’도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한국 정부에 알렸다는 이유로 박병선박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나 박병선박사의 눈물겨운 노력과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으로 마침내 ‘외규장각 의궤’는 2011년에 우리나라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비록 임대 형식이지만 145년 만에 고국으로 귀환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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