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호박죽을 쒀놨으니 가져다 먹으란다. 엄마가 거실 한쪽에 둔 호박 두 덩이를 잡았나 보다. 죽 쒀서 느그들 먹여야 하는데. 엄마는 내가 집에 찾아뵐 때마다 늙은 호박을 가리키며 말했다. 호박죽에 팥도 넉넉히 넣었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소프라노다. 팥 좋아하는 날 꼬시러 팥을 듬뿍 넣은 게 분명하다. 엄마는 며칠 전에도 장어탕을 끓인다고 했다. 언니나 오빠들은 장어탕을 가져가는데 나만 안 갔다. 나도 안다. 자식에게 음식 해 먹이는 부모의 맘을. 음식 가지러 오가는 자식 얼굴 보고 싶은 에두른 사랑 표현이라는 것도. 

하지만 움직일 때마다 음식을 과하게 하는 엄마가 걱정됐다. 얼마나 했냐 물으면 조금 했다는데 양이 엄청났다. 손 큰 엄마가 나만 주려고 호박죽을 썼을 리 없다. 사 남매 집과 이웃이랑 나눠 먹을 분량까지, 큰 솥 하나는 했으리라. 순간 아픈 다리를 끌며 호박과 팥을 삶는 엄마의 동선이 떠올랐다. 저러고 나면 또 아프다고 할 텐데. 아프면 뒤치다꺼리는 근처 사는 언니 몫이었다. 엄마가 요리해 준 게 최고야, 라고 또 너스레를 떨어야 하는데 반대로 나는 짜증을 냈다. 음식 하면서 골골대지 말고 몸 챙기라고 말했다.

엄마는 내 잔소리를 듣기보다 죽이 맛있을 때 가져가라 했다. 나는 엄마에게 핑계 대며 호박죽을 가지러 안 갔다. 엄마는 집요했다. 엄마가 죽을 들고 나설 테니 나는 아파트 입구까지만 오라고. 나는 엄마를 단념시키려 단골 죽집에서 사 먹는다고 말했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알았다, 암튼 되면 와라. 엄마가 삐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나에게 팥이 든 호박죽을 외면하기란 어렵다. 처음엔 엄마가 주는 음식이 반가웠다. 계속 받아먹다 보니 높아가는 엄마의 앓는 소리가 듣기 싫어졌다. 엄마가 아플 때마다 달려가지 못하는 게으름도 한몫하는 것이리라. 늘 엄마를 챙기는 언니도 신경 쓰인다. 언니가 엄마를 두세 번 챙길 때 나도 한 번쯤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주변 일상적인 소음으로 인해 불필요한 일을 줄이려는 마음이 앞섰다. 호박죽을 거절하고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근데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이 외할머니를 찾았다. 엄마가 외할머니 호박죽 배달 좀 하지? 아들은 호박죽이 먹고 싶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죽 싫어하는 녀석이 엉뚱하게 호박죽이 당긴다며 나에게 다녀오란다. 저번 휴가 때 외할머니를 뵀으니 이번 호박죽은 엄마가 직접 가져오라면서. 나는 아들에게 죽을 먹고 싶은 건지 다시 확인했다. 아들이 외할머니 호박죽을 먹으면 군 생활하는데 보약이라고 능글맞게 웃었다.

나는 엄마 집으로 향했다. 내가 아쉬워서 왔는데도 엄마는 살갑게 맞아주었다. 엄마는 매듭진 까만 봉지를 냉장고에서 내주었다. 나는 엄마가 주는 봉지를 받아 집으로 왔다. 나는 야물게 묶인 두 개의 봉지를 풀었다. 순간 웃고 말았다. 호박죽이 담긴 냄비와 뚜껑이 스카치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었다. 김이 새지 말라고. 첫맛 그대로 딸에게 주고픈 엄마의 마음이었다. 엄마의 투박한 손이 떠올랐다. 테이프를 뜯으며 나는 죽상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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