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신록이 눈부시다. 오월은 우리에게 새로운 설렘과 희망을 찾아준다. 만물이 약동하고 기지개를 켜는 푸르른 세상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마치 새 옷을 입고 새로운 일터로 나가는 기대와 행복을 주는 계절이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는 고마운 사람들이 생각이 난다. 부모님, 아내, 자식, 친구들이 더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때가 바로 계절의 여왕 오월인 것이다. 찬연한 5월의 햇살 아래서 문득 45년 前 어느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다. 총각시절의 이야기이다. 그 시절 나는 인사성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필자가 근무하는 사무실 앞에는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과일과 채소, 반찬거리를 팔고 있었다. 부산 범일동 자유시장 앞에 회사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출, 퇴근길에 노점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며 다녔다. 어머니를 모시는 장남으로서 나이드신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가족처럼 친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분들 중에 가장 연세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께 가끔 사과와 딸기 등 제철 과일을 사오곤 하였다.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나이도 물어보시고 가족관계도 물어보시면서 덤으로 과일을 한두 개 더 주셨다.

어느날 할머니께서 물건을 다 팔고 나서 퇴근하는 나를 불렸다. “총각 손금 한번 봐줘도 돼요?”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렇지 않아도 어머니가 몸이 안 좋아 근심을 하고 있었는데 마음속으로 할머니의 목소리가 위안의 소리처럼 따뜻하게 들려왔다. 
“네 ~ 할머니가 손금도 보세요?”
“조금 볼줄 알지”
나는 기꺼이 할머니께 손을 맡기었다.

그리고 마치 할머니의 말씀이 나의 미래를 예언해 주겠다는 믿음을 갖고 싶었다. 무언가에 기대고 싶었다.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나의 거친 머리카락을 들쳐 이마를 살펴보고 관상까지 봐주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왼손, 오른손 손금을 번갈아 보시곤 자신에 찬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총각은 앞으로 잘 살겠네, 큰집을 가지고 땅도 많이 갖고 살겠어, 말년이 참 좋아!”
나는 할머니 말씀을 믿을 수 없었다.

지금 사글셋방을 전전하며 어머니와 동생들과 살아가는 무일푼 총각이 무슨 수로 큰집에 살며 큰 땅을 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할머니가 그냥 젊은이에게 용기를 주시기 위해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왕에 내가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어 할머니께 여쭈어보았다. “할머니 우리 어머니가 항상 머리가 아프고 밥을 잘 못 드시는데 혹시 돌아가시지 않을까 걱정 입니다.” 할머니는 어머니의 나이와 생일을 물어보셨다. 나는 어머니의 생년월일을 말씀해 드렸다. 할머니는 천천히 자신의 손가락을 짚어 보시고 눈을 감고 긴 숨을 후~ 하고 토해 내셨다. 

그리고 “올해 고비를 넘기면 여든여섯까지 사시겠네, 그 대신 총각이 항상 어머니 곁에 있어야 돼” 나는 고마움을 표하면서도 이 할머니가 분명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술을 받고 미음조차 잘 넘기지 못하는 어머니가 어찌 팔십 넘게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세월은,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흐르고 흘러 어머니 연세가 올해 87세가 되셨다. 부산 자유시장 앞에서 노점상을 하시던 할머니 예언을 1년 뛰어넘게 되었다. 인생은 긍정적 예견과 함께 간절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을 때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다고 나는 굳게 믿게 되었다. 하늘이 내게 주신 수명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나는 나의 수명에서 3년을 어머니께 드린다고 했다.

그리고 그 3년이 어머니가 살아오신 삶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3년이 되도록 만들어 드리고 싶다. 5월 이 찬연한 아름다움이 가득한 푸르른 세상, 우리 어머니가 장수하실 수 있도록 축복의 기도를 해주신 그 할머니가 보고 싶고 은혜롭게 느껴진다. 하늘에서 과일나무를 심고 계실 그분의 명복을 빌며 나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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