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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명품강향림 수필가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3.03.1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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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시계를 보니 10분 전 0시였다. 내 결혼생활보다 오래된 십자수 벽시계가 정겨웠다. 결혼 전 십자수가 유행일 때 내가 만든 벽시계였다. 머리 큰 꼬맹이 커플이 뽀뽀하는 그림이다. 나는 십자수를 완성하느라 엄마에게 구박받고 새벽 귀신 소리까지 들어가며 여러 밤을 지새웠다.

벽시계는 세월 먹은 티를 내며 반항하듯 가끔 멈췄다. 내가 건전지를 갈아주고 뒤판을 두들겨도 꿈쩍하지 않았다. 붓으로 달래며 청소했더니 어느 순간 초침이 움직이며 분침과 시침까지 살아났다. 한동안 입지 않은 점퍼 주머니 안에 손을 넣다가 생각지도 못한 만 원짜리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나는 침대 위에 뒹구는 TV 리모컨을 들었다. 채널을 돌리니 유명 P 브랜드 토트백과 미니 백을 진행자가 설명 중이었다. 카메라는 가방 든 모델들을 여러 각도로 클로즈업하며 쉼 없이 돌아갔다. 명품에 관심이 없던 나는 가방 가격에 놀랐다. 작은 미니 백 가격이 백만 원대였다. 미니 백보다 큰 토드 백은 가격이 두 배나 비쌌다. 그 가방의 로고를 보니 10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친구와 라식수술 상담을 받으러 광주 모 안과로 갔다. 상담 후 눈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검사를 받았다. 산동 검사를 받을 때 넣은 안약의 영향으로 동공이 확대돼 사물이 흐릿해 보였다. 의사 말로는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몇 시간 걸린다 했다. 하지만 나와 친구는 병원 옆에 자리한 백화점으로 향했다.

백화점 입구 작은 진열대에 액세서리를 파는 곳이 보였다. 액세서리를 구경하러 간 나와 친구는 그제야 눈 상태를 실감했다. 작은 액세서리 핀 하나를 보려면 눈을 가까이 대야 초점이 맞춰졌다. 우리는 물건에 눈을 밀착하며 킬킬거렸다. “눈이 진짜 나쁘신가 봐요.”

액세서리 사장은 우릴 보며 안타까워했다. 우린 웃느라 둘러대지 못했고 사장은 액세서리 가격까지 깎아줬다. 평일이라 백화점 안은 한산했다. 친구와 나는 명품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P 명품관 입구에는 정장을 단정하게 갖춰 입은 직원들이 서 있었다. 들어가기에 부담스러운 분위기였다. 입구로 들어서자 정장 차림의 남녀가 작은 통로 차단 걸이를 풀어주었다.

그때였다. 우리 곁을 지나가는 명품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 안 하고 운동화에 간편한 차림인 우리와 명품녀의 모습은 극과 극이었다. 매장 직원은 미소지으며 우리가 아닌 명품녀에게 다가가 친절을 베풀었다. 명품관에서 느꼈던 소외감 그대로 홈쇼핑을 보며 되새김질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허우룩한 마음을 달랬다. 명품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내 무의식에는 버리지 못하는 열등감이 있나 보다.

벽시계 초침 움직이는 소리가 내 심장 박동 수를 다독였다. 여러 날 공들이며 수놓은 낡은 십자수 벽시계가 애틋해 보였다. 벽시계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후로 탈 없이 제 일에 열중이었다. 값어치 없어도 내가 만든 이 세상 단 하나의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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