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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칠언율시(七言律詩)”
  • 김영신 기자
  • 승인 2023.03.0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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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틈 타 차림 갖추고 성곽 오르니
벼농사 풍년 들어 들판이 황금 빛 이로구나
예쁜 새는 눈치 보며 시냇가에서 울고
변방 기러기는 약속하듯 가을소식 전해온다.
서리 내린 단풍나무는 외딴 마을 물들이고
누런 국화 쳐다보니 종이와 붓이 바쁘구나
시 읊다 어둠 찾아와 돌아 갈 길손 다급한데
근남사 모임은 아직 시심을 거두지 못했구나.
                  -죽천 김계은 유장에 쓰다-



조부모님들의 합동기일이던 날, 오빠와 함께 45년 전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2010년경, 옆 마을의 한 어르신으로부터 오빠를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찾아뵈었는데 조부님의 漢詩가 수록된 두툼한 문집(文集)을 주셨고, 오빠는 최근에야 그 문집에 들어있던 할아버지의 詩 몇 편을 순천에서 한학에 능통하시고 글 잘 쓰시는 어떤 분에게 의뢰하여 의미 있는 멋진 병풍을 만들어 놓았다.

오빠는 2대 독자이던 아버지에게서 태어 난 첫 아들이었고, 할아버지는 그런 손자를 귀히 여기셨으며, 고사리 같이 작고 여린 손을 꼭 잡고 어디든 데리고 다니셨다. 오빠는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 등 뒤에서 한글을 한자 한자 읽혔고, 그렇게 읽힌 글자를 할아버지가 귀찮아하실 정도로 읽어내자, 할아버지는 ‘신문 읽는데 방해 된다’며 ‘저리가라 이녀석아.’하시며 오빠를 밀어내셨지만 내심 대견해하셨다고 한다.

장날 할아버지 손을 잡고 서커스 구경을 하러 갔고, 하동 화개까지 고로쇠 물을 먹으러 갔었다는 오빠는 나를 포함한 동생들한테는 없는 할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들을 훨씬 더 많이 갖고 있다. 할아버지를 닮아 꼼꼼한 오빠는 글을 써주신 분으로부터 한자로 된 할아버지의 시를 한글로 해석 해 달라 부탁했고, 문서로 만들어 코팅까지 해놓았다. 아무튼 묻힐 뻔 했던 할아버지의 발자취가 주변의 도움으로 이렇게 멋진 병풍으로 부활했고, 오빠와 나는 할아버지의 칠언율시(七言律詩)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아버지의 시에 언급된 근남음사(勤南吟社)를 찾아보니, 순천 쌍암, 지금의 승주에 있었던 ‘시를 쓰는 모임’이었는데 아마도 할아버지는 그 모임의 회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광양에는 ‘운남음사(雲南吟社)‘라는 모임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어릴 적, 수염 허옇던 할아버지 대여섯 분이 우리 집 공루(空樓)에 둘러앉아서 먹을 갈아 붓으로 글을 쓰고 계시면 엄마가 정성껏 점심상을 차려서 올려드리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제사가 유난히도 많았던 우리 집, 제사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달걀이었다. 그걸 먹으려고 쏟아지는 잠을 참아가며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곤 했었다. 

제사를 마친 후, 연꽃처럼 예쁘게 다듬어져 상에 올랐던 계란으로 음복(飮福)을 하면서 젊은 할아버지의 詩心을 상상했다. 바쁜 농번기, 엄마가 많은 농사일에 시부모 봉양, 5남매 치다꺼리까지 등 온갖 집안일에 치어서 3년을 내리 생일을 잊어버리자, 할아버지는 30원을 주시며 서운해 하는 어린 손녀를 달래주시기도 했다. 첫 손자인 오빠만큼이나 첫 손녀에게도 당신의 방식대로 사랑을 주셨던 ‘만재’라는 호를 가진  詩人 김재근 할아버지가 새삼 많이 그립다.   

김영신 기자  g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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