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구경 하기 힘든 우리 동네에 오랜만에 눈이 내렸다. 그것도 폭설(暴雪)이... ‘화이트 크리스마스’... 성탄절을 코앞에 두고 내리는 눈이라 처음엔 반가웠지만 잿빛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는 점점 굵어지면서 대설주의보, 대설경보로 이어졌다. 내리면서 쌓이고, 또 내리면서 쌓이고... 그칠 줄을 모르는 눈에 사람들은 이동을 자제하고 일찍 귀가해서 최대한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에 경쟁하듯이 주차를 했다.
아파트 입구와 주차장에 쌓인 눈은 이제 더 이상 ‘화이트크리스마스‘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경비원이 쌓인 눈을 빗자루로 쓸어가며 주민들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동선을 확보했다. 해가 지자 더 굵어진 눈송이들은 빠른 속도로 쌓이기 시작했고, 오랜 만에 내리는 눈이 폭설로 변하자 귀가를 서두른 입주민들의 차량들은 다른 날과 다르게 빠른 시간에 주차장을 빼곡이 채웠다.  
가족들의 카톡방에서는 일찍 귀가하라는 말과 다음 날 새벽 출근길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들이 이어졌다. 곡성과 구례, 남원, 임실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20cm~50cm가 쌓였다는 소식과 함께 하얗게 변한 세상을 스마트폰에 담아 보내오기도 했다. 
설레임과 겨울 낭만의 아이콘에서 더 이상 창밖을 내다보고 싶지 않게 하는 애물단지가 됐구나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은데 새벽 2시경 창을 넘는 소음에 눈이 떠졌다. 베란다로 나가 밖을 내다보니 주차된 차들 지붕위로 꽤 많은 눈이 쌓였고 주차장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쌓이는 눈을 감당 못한 경비원이 빗자루에서 기계로 바꿔서 혼자서 눈을 치우고 있었다. 경비원의 눈 치우는 기계 소리는 쉴 새 없이 이어졌고 그 소리에 깊은 잠에 빠지지 못한 채 새벽을 맞았다. 밤 내내 기계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왔으니 경비원의 고된 제설작업은 분명 아침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창밖을 내다봤을 시간에도, 여명이 밝은 아침 7시에도 내 집앞 제설작업을 돕는 주민들은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일어나서 패딩을 걸치고 나가서 함께 눈을 치워야 하나 어째야 하나...누워서 눈을 뜬 채 망설이다가 밤새도록 혼자서 눈을 치웠을 경비원의 수고로움에 마음이 움직여 벌떡 몸을 일으켰다.
키위를 깎고 유자차를 끓여 보온병에 담았다. 포트에 물을 다시 팔팔 끓여 다른 보온병에 담고 컵라면과 김치, 홍삼과 믹스커피, 호두 율무차를 챙겨서 종이가방에 넣고, 감사하다는 메모와 함께 경비실에 두고 올라왔다. 내 집앞 눈치우기는 '건축물의 소유자(점유자)또는 관리자로서 그 건축물에 대한 관리 책임자가 건축물 주변의 보도, 이면도로 및 보행자 전용도로에 대한 제설,제빙 작업을 해야 한다'고 2006년부터 시행된 자연재해대책법 제27조에 나와 있다.
경비실을 나와 수북이 쌓인 눈을 밟으며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생각했다. 급여를 받는 경비원이 있으니 경비원 혼자서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 많은 눈이 와서 모두가 불편한데 단 한명도 동참하지 않는 ‘공동체의식’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씁쓸했다.

김영신 기자  g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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