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4일, 망덕포구 정병욱 가옥에서 ‘백영 정병욱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및 서거 40주기 추모 좌담회’에서 제자 이강옥 영남대 명예교수는 ‘백영 정병욱 선생의 국문학 연구와 교육’이라는 내용으로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 교수는 맺음말에서 “정병욱 선생은 국문학을 비롯하여 전통예술과 국문학 분야에서 연구의 기반을 마련해주고 학문적 비약을 이뤄냈다. 한 학자의 존재가 끼친 선한 영향력과 공적은 이렇게 위대했다“라고 극찬했다.

또, 제자 서종문 경북대 명예교수는 ‘백영 정병욱 선생님과 판소리 보급’라는 주제에서 정병욱 교수는 “판소리 학회를 주도적으로 창립하였으며, 판소리 보존과 보급, 학문적 접근에 있어서 선구자적인 일을 해내셨다”라고 언급했다.

판소리학회 2022년 10월 판소리 연구 제54집에서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 배영현 소장은 ‘정병욱 수집 판소리 녹음테이프‘라는 논문을 통해 판소리 연구자료 백영 정병욱 선생의 ’한국의 판소리(집문당 1981)‘를 읽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 판소리 감상회 100회 기록‘(국립중앙도서관, 2018년)은 초창기 판소리 음악연구를 위해 고군분투한 업적”이라며 귀중한 문화자산임을 인정하고 선생의 업적을 기렸다.

▶윤동주와 김약연 목사  
일제 강점기 이 나라 백성들은 한결같이 조국의 자주독립을 염원하고 이를 지상과제로 삼아왔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도 윤동주와 정병욱은 남달리 애국심이 충만한 청년들이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가족을 비롯해서 주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윤동주가 청소년 시절 가장 큰 감화를 받은 분이 외숙 김약연(金躍淵,1868년~1942년)목사였다. 김 목사는 교육가이며 독립운동가로서 용정에 명동서숙을 설립하여 동포 자녀들을 교육시키는데 앞장섰고, 명동교회를 세워서 동포들을 신앙으로 결속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기에 동포들 간에는 ‘북간도 대통령이라고 할 정도로 애국심과 지도력이 뛰어난 분이다. 일설에 의하면 안중근 의사로 하여금 거사를 도모하는 데에도 물심양면으로 뒷받침해주신 분이라고 한다.

1929년 평양 신학교를 수료하고 이듬해 목사가 된 김약연 목사는 원래 맹자를 만독(萬讀)할 만큼 고명한 학식을 갖춘 유학자였다.  청소년기에 김 목사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생질인 윤동주를 비롯하여 교계 지도자가 된 문익환·문동환 형제, 강원용 목사, 안병무 교수, 나운규 영화인, 독립운동가 송몽규(운동주의 고종사촌형, 윤동주와 함께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옥사) 등 이 밖에도 많은 지도자들을 교화했으며 교류했다.

▶정병욱과 그의 아버지 남파 정남섭 
남파 정남섭(1899년~1968년)선생은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의협심이 강하고 정의로운 성품의 소유자였다. 선생의 나이 20세 되던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고향 남해는 4월 2일 설천면에서 시작해서 4월 6일에는 남해군 전역으로 확대되어 1,000여명의 군중이 만세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남섭 선생은 최초 독립만세운동을 모의(謀議)하고 추진한 23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1985년 12월 23일 건립된 남해 3.1운동 기념비에 정남섭 선생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1922년 4월, 큰 아들 병욱이 출생할 무렵 진주사범 전신인 경남도립교사 양성소를 수료(진주사범 졸업생명부 1회 졸업생 등재)하고 경남 거제군 소재 초등학교에 첫 부임했다. 그 후 여러 곳을 옮겨 다녔고 아들 병욱이 일곱 살 때 보통학교에 입학하는 1928년부터는 하동진정보통학교에 재직하다가 1933년에 10년간 봉직했던 교직을 떠났다.

정남섭 선생이 교직을 선택한 것은 3.1운동 중죄를 면하고자 한 것이었지만 일본인 교장이 있는 곳에서는 노골적으로 핍박과 멸시를 당하는 일이 자주 있게 되어 모멸감이 쌓이게 되었다. 일제의 만행은 교직 뿐 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자행되었다. 또한 그들은 조선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만주사변(1931년 9월 18일)을 일으켜 병참기지화 하고 장차는 중국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막대한 군사비 염출 목적으로 농가에서 빚어먹던 자가용주법(自家用酒法)을 폐지하고 일정한 시설을 갖추면 양조장을 허가해주는 양조장법(釀造場法)을 제정한 것이다. 

이 무렵 정남섭 선생의 선친 한학자이던 정상철(1870년~1945년)공은 아들 정남섭 선생의 교직생활이 순탄하지 못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음을 감지하고 자영업으로 할 수 있는 양조장을 진월면 망덕에 설치하는 것으로 허가(1930년 9월 1일)를 받았다.

그러나 당장 사업을 시행하지 않고 2년여 기간 유보상태로 있다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구나 하며 1933년 초에 시작하기로 결심을 굳히고, 선친 명의가 아닌 본인 정남섭 명의(名義)의 허가증(1932년 11월 22일)을 교부받았다.
정남섭 선생은 이듬해이던 1933년 초에 퇴직을 하고 설비투자에 주력했고 1934년부터는 자리가 잡혔다. 그 해 아들 병욱이 부산동래고보에 진학하면서 하동에 남아있던 가족들이 진월 망덕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양조업을 하는 과정에서 밀주(密酒)단속이 강화되자 허가받은 양조장이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 사실을 직시하고 정남섭 선생은 밀주(密酒)단속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소비처를 다양화 하는데 힘썼다. 예컨대 공사현장, 어민, 섬진강을 왕래하는 선박 등을 대상으로 판촉활동을 벌였다. 그 무렵에 진월면에 갓 서른 살의 젊은 안상선 면장(재임기간 1936년 4월30일 ~ 1945년 12월 25일)이 부임하여 역대급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사업이 진월·진상간 도로개설사업, 진월들(津月坪) 대규모 간척사업 200ha(60만평)조성 등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사업비가 필요했다. 이러한 사정을 파악한 정남섭 선생은 안상선 면장과 협의를 거쳐 ‘이정저수지’ 축조에 상당한 기부금을 출연했으며, 진월면 행정에도 적극 협조했다. 또한 광양의 특산물 김(海苔)의 판로개척을 위해 멀리 신의주까지, 해외로는 일본까지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광양 김’의 명성을 높이고 어민소득증대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와 같은 남파 정남섭 선생의 진정어린 선행에 대해 면민 모두가 고맙게 생각했으며 덕망가로 칭송도 자자했다고 한다.

안상선 면장은 10여 년간에 걸쳐 진월면 대역사(大役事)를 마무리 할 즈음, 8.15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안상선 면장은 그 동안의 업적을 인정받아 1946년, 미군정청 인사처장으로 발탁된다. 미 군정청은 1946년 9월 12일부로 한국인 부처장들에게 행정권을 이양했다.

광복이후 우리나라는 일제잔재청산과 찬탁.반탁 그리고 내정개혁 등으로 격동과 시련이 겹쳐있는 혼돈의 시기였다. 이때 3.1운동 당시 남해지역에서 선도역할을 했고, 교직생활을 거쳐 진월 망덕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진월면에서 추진해 온 각종 사업에 적극 협조하고 광양 김의 판로개척에 앞장 선 일들로 인해 남파 정남섭 선생의 면장 추대가 거론됐다. 결과적으로 면민들이 마음을 모으고 상급기관에서 적극 수용하였기에 1946년 10월 14일 11대 진월면장직을 맡게 되었다.

건국 후 이승만 정부에서도 인정을 받아 1948년 12월 30일까지 총 2년 2개월을 재임했다. 불멸의 민족 시인으로 승화한 윤동주 시인, 국문학·판소리 국악발전에 큰 업적을 세운 백영 정병욱 교수 두 분의 우정(友情)을 꽃 피우는 데는 외숙 김약연 목사와 아버지 남파 정남섭 면장의 후광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련의 인연들이 우리 지역에 소중한 문화자산으로 남게 되었다. 따라서 이를 잘 보존하고 가꿔서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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