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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옥 화가의 작가 노트-14 친애하는 당신께"당신을 만난 건 저에게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
  • 홍봉기 기자
  • 승인 2022.12.21 09:08
  • 댓글 1

로얄 블랜드 홍차잎이 우려나길  기다리면서 동백나무 잎에 하얗게 내려 앉은 햇살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햇살이 놀다가 떠나가면 홍차를  마시고 곧 피어날 동백꽃 봉오리가 몇 개쯤 되는지 세어 보러 가려고 합니다.  

여기 광양에도 갑자기 추위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당신은 겨울 채비 단단히 하셨나요? 전 며칠 전부터 금호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40년 이상된 든든한 측백나무와  서너사람이 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는  동백나무 무리가 발길 가는 곳마다 잘 왔다고 인사하는 듯합니다.    

당신은 올겨울 동백꽃을 보셨나요?  여기오니 브릴리언트 핑크와 오페라 핑크의 동백꽃이  한 두송이씩 빼꼼이 웃어 줍니다.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요. 당신을 만난 지가 일년하고도 2개월이 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떫은 대봉감에 단맛이 돌았을 때, 당신을 처음 만났는데 지금도 미세한 떨림이 내 몸을 감돌고 있습니다. 부족한 내가 당신을 만나도 되는지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는 데,  혹시 당신 눈치채셨나요?    

당신을 잘 알지 못하는데  내 마음을 얼마 만큼  보여 줘야 하는지, 아마도 드러내기가 두려웠던거  같습니다.  첫사랑의  시작도 아마 이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마음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두세달 정도는 겉도는 얘기들을 한걸로 기억합니다.   

당신을 만나기 전 나 자신조차도 가슴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나의 색깔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밤에도 동백나무를 보러 나갔다가 밤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겨울밤의 달과 별은 대지 위에 더욱 가까이 닿아 있는 듯합니다. 저녁 잠자리를  마련하려는 새들의 날개짓이 동백나무 속에서 푸드덕 거립니다. 
오래전 이 마을에 살았던 아름다운 사람들의 전설을 들은 적 있나요? 그 많은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던 별들이 밤공기 속에 실타래가  풀리듯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습니다.     

당신이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지만 전 좀 더 용기를 내어 가슴속 깊이 들어 있는 이야기들을 당신께 들려 주기로  맘 먹었는데,  당신도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께 글을 보내는 동안의 사계절은 이전의 계절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다가왔답니다.

제비꽃이 들판 가득 보라색 융단을 깔면 당신께 어떤  멋진 표현을 써서 전할까 무척 고민하면서 봄날들을 보냈답니다. 봄날 밤의 달콤한 내음, 길에  피어있는 작은 들꽃까지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답니다.  겨울이 더 깊어지기 전에 털실로 뜨고 있는 목도리와 장갑을 마무리하려는 손길을 바삐 움직여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주면 반질하게 다듬어 마을 언니들에게 코잡는 방법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배우던 소녀를 소환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애닳아 하던 얘기를 당신께 함으로써 상실감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바뀌어 저장되었답니다.   

당신과의 만남이 여러 달 지나갈수록 찬바람이 불던 가슴과 타지에서의 외로움과 텅비었던 한쪽 가슴이 메워지고 위로받으며 포근해지고 있었나 봅니다.  김이 마르는 동안 겨울햇살이 담장에 부딪히는 따뜻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이미 가늘어진 털실을 손가락에 걸고 풀고를 무수히 반복하면서...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겨울햇살 아래 그림자에 차곡히 더해져 짙어집니다. 다음달은 어떤 그림과 이야기들을 당신께 들려 줘야하나  이 고민으로 사계절을 보낸 거 같습니다.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고 많이 아팠다고 결코 답장이 없는 당신께 하곤선 너무 포장하지 않고 드러낸  거  아닌가, 하고 혼자 얼굴 붉히기도 했지만, 당신을 만나는 동안 후회되지 않게 열정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이맘때쯤이면 황화 코스모스를 납작하게 눌러서 붙인 문풍지에 손때가 꽤 묻어났을 것이고 그럼 우린 연탄에 고구마를 한 솥 푹 삶아 김장김치를 얹어서 속을 뜨끈하게 채우곤 했는데, 당신도 나와 같은 겨울날의 기억이 있는지요? 

수국꽃이 필 때 당신께 한 트럭 보내 드렸는데 혹시 받아 보셨는지요?  받으셨다는 기별은 없었지만 당신이 좋아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가을날에는 코스모스꽃을 한아름 꺾어  오후의 티 타임에 초대했는데  당신, 거기도 오셨는지요?  당신과 얘기를 나눈 지가 그리 길지 않게 느껴집니다. 훗날 이 시간들은 마치 섬광처럼 기억 속에서 반짝일 거 같지만 서툴렀던 만큼 아름답게 기억될 거라 확신합니다. 당신을  만난 건 저에게 크나큰 행운이었습니다. 
 가끔은 일방적인 짝사랑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당신이 거기 계셔 주셨기에 여름날의 호우가 지나가고 난 후 나무가 훌쩍 자라듯이 저도 성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의 이야기들에도 곧 먼지가 켜켜이 쌓일 것입니다.  먼훗날  당신이 먼지를 털어 나의 이야기를 혹여 다시 읽게 된다 해도 잠시 저를 기억해 주신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부디 당신이 건강하시고 행복한 시간들만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 당신의 벗으로부터 -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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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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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ndy4170 2022-12-22 11:45:22

    어쩌면 이렇게 구구절절이 아름다운지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면 이렇게 예쁜 글들이 쓰여지는건지 궁금합니다.
    작가님의 절절한 사랑얘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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