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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習)  소설가/양관수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2.03.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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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벌 거미 들은 나름대로 습성이 있다. 집짓거나 먹이를 구하며 살아가는 걸 보면 특별하다. 우주적이기에 놀랍고 신기로운 게 한둘이 아니다. 여기에서 더 궁금한 게 있다. 그것들의 우주적 기교가 본능적인 것인지 이성적인 것인지를 알고 싶다. 잘 모르긴 해도 태곳적부터 학습되어 온 생존 기법일 것이다. 그것들만의 살아가는 까마득한 방식이리라. 기억되기보다는 DNA에 새겨진 기호이리라.

곤충을 포함한 동물적 삶의 습성들이 경이롭기에 이제 그것들이라 하지 않고 그들이라 존중하겠다. 그들의 존재 방식은 인간으로부터 존중 받을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인간도 동물로 분류한다. 단세포에서 시작해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 유인원을 거쳐 비로소 인간으로 간추려진다. 어떤 학자는 유인원으로 분류된 보노보부터 인간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인간과 영장류의 DNA 다름은 약 2.4(혹은 3.0)%이고 보노보와 틈새는 2.0%라 한다. 두 발로 직립하며 꼬리가 거의 없는 보노보는 인간과의 유전자 차이가 가장 적은 동물이라 하겠다. 이처럼 미세한 차이로 인간이거나 아님이 갈리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역사도 본능적인지 이성적인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다.

파스칼이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 했다. 데카르트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틴어)’라고 했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생각을 통해서만 존재한다.’고 했다. 그들은 인간의 존재성를 이성이라는 명분으로 여타 동물들과 분리한 것이다. 이에 맞서 정신분석학자 라캉이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응수했다. 더 나아가 칸트가 ‘인류 역사는 이성이 지배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칼 맑스는 ‘인간 역사는 이성이 아니라 물질이 지배했다.’고 맞장 떴다. 유물사관으로 칸트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파스칼, 데카르트, 하이데거, 칸트 등 4인방은 인간의 생각과 이성을 주장했다. 이에 라캉, 맑스 2인방은 인간에게 생각이나 이성은 없다고 응수했다. 본능만 있다는 말이 된다. 본능은 ‘생존을 위해 물질적으로 작용’하기에 인간도 여타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말인 것이다. 2인방은 ‘인간은 동물처럼 물질에 길들여진 오래된 자신들의 습성을 생각, 이성이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인간도 DNA에 각인된 기호에 따라 판단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 언행이 생각이나 이성이 아니기에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결국 ‘나는 없고 종의 생존을 위한 무리가 존재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4인방 말이 맞나 2인방 말이 맞나? 상식에 맞기도 하고 크게 벗어나는 말이기도 하다. 의심스러운 건 확인을 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선거를 잘 바라보면 된다.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등 지구상의 많은 국가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거를 치른다. 지금 우리나라도 선거 열풍이 뜨겁다. 새 대통령을 뽑는 것이다. 국민 전체가 아닐지라도 대다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인물 한 사람을 선출하는 축제인 것이다. 국회의원, 지자체장, 시도의원, 기타 단체장 등을 뽑는 선거도 있다.

이제 출마자들의 공약을 잘 살펴본다. 무슨 지원금, 오르거나 떨어지는 집값, 어떤 농산물, 무슨 생활비, 병사 봉급, 그린벨트 해제, 어디의 도로, 물가 상승이나 하락, 증세 감세 등 모두 물질적 표현들이다. 그 물질들로 인해 인간들은 행복해지거나 불행해 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물질들을 재분배하는데 어디에 어떻게 지분을 놓느냐에 따라 진보와 보수가 갈린다. 그로 인해 선거를 지나쳐 전쟁도 일어난다. 전쟁도 땅따먹기고 생산되는 자원의 차지가 목적이다. 그 물질들을 빼앗거나 지키기 위해 많은 피를 흘린다. 그렇기에 선거판이나 전쟁에 4인방이거나 2인방의 주장들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인간들은 700만 년 안팎 역사에서 많은 생존의 사안들을 겪었다. 그것들을 후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인간 DNA는 기호로 각인했을 것이다. 종의 확산과 보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생아는 태어나자마자 학습 없이도 배고프다 울고 엄마 젖을 물며 빨아먹는다. 그게 습(習)의 출발이다. 여타 동물들도 다르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이며 물질적인 삶을 회피하지 못한다. 거부하면 굶어 죽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고 가치라 여기는 선거판을 톺아본 것이다. 생각이나 이성이 존재하는지를…. 투표할 사람이나 뽑히려는 사람 모두가 외치는 것들이 다 물질들이다. 어떤 사랑이나 폭력도 그 대상인 물질이 있어야 가능하다. 인간들이 부르짖는 생각이나 이성이라는 용어가 물질적인 모습을 감추려는 겉치레가 아닐까. 이 허위도 까마득한 삶의 습성은 아닐지 생각해볼 일이다. 개미 벌 거미 들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선거판을 보고 자신들 것과 비슷한 DNA를 인간들도 가졌다며 웃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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