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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마음을 치유하는 놀라운 효과가 있다"양관수 소설가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21.06.0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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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집(교도소)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였다. 한 중년 남자를 만났다. 그는 큰집에서 무척 오래 살았는데 앞으로도 그만큼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큰집의 생활을 마치면 서울로 간다고 했다. 그는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부자로 사는 걸 바라는 게 아니었다. 매우 단순했다. 그의 바람은 어머니도 아닌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한 끼 밥상이었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그 자신이 모르는 게 아니었다. 너무나 잘 알기에 유일한 소원이라 한 것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서울 큰 길거리에 나가 마구잡이로 살인을 저지른 뒤 자살하겠다는 말이었다. 필자는 그의 말을 가로막지 않았다. 그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말을 잘하도록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은 치유의 기본이다. 필자를 비롯한 참여자들은 그의 말을 끝까지 다 들어주었다.

나중에 필자가 그에게 지금 한 말들을 글로 써보면 좋겠다고 했다. 종이만큼 말을 끝까지 잘 들어주는 대상도 드물다. 필자는 그가 하얀 여백에 여한을 끝없이 풀어내길 바란 것이다.

그가 자신은 학교 문턱에도 가본 일이 없는데 글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쓰냐고 했다. 필자가 대답했다. 손 가는 데로 써놓으면 그래서 그 내용이 좋으면 출판사 편집부에서 다 바로잡아 책으로 펴낸다는 말이었다. 그때서야 그의 눈에서 밝은 빛이 새어 나왔다. 그가 글을 써보겠다고 다짐을 했다.

어느 날 그가 프로그램에 나타나지 않았다. 큰집 주인에게 물어보니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한 것이었다. 이후 그를 만나지 못했다. 지금도 그는 어딘가에서 여한을 되씹으며 망상에 시달릴 것이다. 필자가 바라는 건 그의 트라우마가 글쓰기를 통해 치유되길 바랄 뿐이다. 그즈음 그들에게 읽게 한 책 중에 채식주의자도 있었다. 토론할 때 참여자들에게 소감을 발표하게 했다. 모두 한결같이 ‘야(?)해서 좋다’고 했다.

한번은 젊은 엄마가 유치원에 다니는 애 손을 잡고 필자에게 상담을 신청했다. 만나보니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엄마가 데리고 온 유치원생 아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싶다는 말이었다. 필자가 애에게 글 잘 쓰고 싶냐 물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아이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데 글쓰기가 안 된다고 말했다.

필자는 유치원생 한 명에게 글쓰기 지도를 하게 됐다. 개인 교습인 만큼 수강료도 적지 않았다. 그걸 엄마가 스스럼없이 받아들였다. 그때 필자는 엄마의 과열로만 보지 않았다. 아이의 욕구도 꽤 높았다. 아이가 글쓰기를 싫어하거나 싫다고 표현한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유치원생을 홀로 앉혀놓고 책을 읽히고 글을 써보게 하니 나름 소질이 있었다. 아이의 재능과 그것을 발견한 엄마의 지혜가 유치원생 글쓰기 개인 교습이라는 욕망으로 진행된 것이라 필자는 이해했다.

필자가 애에게 처음 글쓰기를 시켜보니 1학년용 공책에 세 줄을 썼다. 애는 필자가 뭔가를 설명하면 잘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애의 글쓰기는 날로 늘었다. 필자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석 달 만에 애가 공책 한쪽을 다 채우는 스토리텔링을 썼다. 또 석 달 뒤엔 공책 두 쪽을 다 채우는 글을 썼다. 개인 교습을 시작한 지 1년쯤 됐을 때 엄마와 애는 밝게 웃으며 필자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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