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입춘이 지난지도 벌써 보름,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다.
설을 전후로 찾아드는 가장 심한 추위를 ‘세한’이라고 한다. ‘세한’이 지나가면 봄바람 살랑이고 꽃들이 앞 다투어 피는 봄이 온다. 국립박물관에서 전시하는 ‘한겨울 지나 봄 오듯’ 전시는 김정희의 무채색의 세한도와 김홍도의 화려한 평안도 풍속화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타 지역 방문 자제’라는 코로나 방역지침을 어기는 건 아닐까 하면서도 세한도 진품이 전시된다는 소식에 서울행 KTX를 타게 됐다. 플랫폼을 들어가기 전 손소독과 체온체크는 기본, 열차 안에서 마스크는 벗을 수 없고 물도 마실 수 없다. 여기에 코레일은 거리두기를 위해 창가 쪽 좌석만 판매하고 있다. 열차내 사람의 손이 닿는 객실출입문과 화장실은 상시 소독해 승객을 안심시킨다. 한마디로 방역지침이 철저히 지켜지므로 크게 불안해 할 이유가 없을 성 싶다. 
추사 김정희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워낙 유명한 조선시대 인물이라 그를 기념하는 기념관들이 우리나라 곳곳에 더러 있다. 김정희의 유명세를 더 띠운 ‘세한도’는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제주 추사관에서도, 경기도 과천 추사박물관에서도 영인본 외에 진짜 모습은 만나기가 어렵다. 
이번 전시는 미술품수집가인 고 손세기 선생의 아들 창근(91)씨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세한도’를 지난해 9월 국가에 기증, 국보 제180호가 된 이후 처음 공개하는 전시다. 
세한도를 겨울에, 김홍도의 평안감사향연도를 봄에 비유한 콜라보 전시에 가깝다. 전시기획자의 감각이 돋보인다.  
초라한 집 주변으로 소나무 한 그루, 잣나무 세 그루가 전부인 수묵화 ‘세한도‘는 참 쓸쓸한 그림이다. 
조선 최고의 명필이기도 한 추사 김정희는 붓글씨 뿐 만 아니라 문장력까지 뛰어난 천재 엘리트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에 머문 덕에 일찍이 유학물이 들었던 유학파였다.
당시 청나라에서 유행하던 ‘금석학‘을 익혀 북한산에 있는 진흥왕 순수비의 비밀을 밝혀낸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사람의 운명이 항상 평온하고 안락할 수만은 없는 일. 세도정치 주도 세력인 안동김씨 일당은 김정희에게 대역죄를 씌워 제주도로 유배를 보낸다. 평생을 부족한 것 없이 귀공자처럼 살아 온 김정희의 제주도 유배생활은 견디기 힘들 수 밖에 없었다. 풍토병에 시달렸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힘든 것은 견디기 힘든 ‘외로움과 쓸쓸함’이 아니었을까... ‘세한도’에는 김정희의 제주 유배생활의 외로움이 잘 녹아있다. 
김정희를 잘 따랐던 제자 역관 이상적은 중국에 갈 때마다 스승 김정희에게 줄 다양한 서적들을 어렵사리 구해다 주었다. 김정희는 그런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으로 1840년에 세한도를 그려 ‘발문’을 써서 그에게 주었다.
이후 세한도는 이상적의 손을 떠나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쳤다. 
일본에 있던 세한도를 찾아온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붓글씨 선생이었던 진도사람 손재형이라고 한다. 손재형은 정치에 뜻을 품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손창근 씨의 아버지 손세근에게 세한도를 맡겼으나 결국 정치에 입문도 하지 못하고 세한도마저 되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세한도는 그렇게 손재형의 손을 떠나 손세근에게 왔고 그의 아들 창근 씨가 지금까지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한도는 정작 그림 그 자체도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중국 문인 등이 쓴 감상문, 하마터면 일본에 남았을 세한도를 반겼던 정인보 등 우리나라 문인들의 글씨가 어우러져 더 유명해진 게 아니었을까· 하고 일행에게 속삭이는 관람객도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 다양한 스토리가 세한도를 국보로 등극시키는데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생의 시련이나 고난에 비유되기도 하는 ‘세한(歲寒)’. 
지금 우리에게 닥친 시련은 2019년 겨울에 시작되어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코로나19이다. 
코로나19는 흩어진 가족들이 모여 웃음꽃을 피워야 할 설날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좋은 사람들과 차 한 잔 나눌 수 있는 여유도 앗아가는 등 모든 일상을 흩어놓았다.
‘세한’의 추위와 외로움을 견딘 추사 김정희처럼 꿋꿋한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면 잃었던 우리의 일상도 곧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겨울 지나 봄 오듯’ 전시는 아마도 봄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담아 기획된 것은 아니었을까...
전시는 4월말까지다.   

김영신 기자  g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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