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 철학자 칸트는 이 세계를 둘로 나누어 설명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진짜가 아니라, 내가 구성해낸 주관적인 세계로서의 ‘현상’ 세계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내 인식의 틀이 재해석한 세계인 셈이다. 반면에 내가 절대로 다가갈 수 없는 실제세계, 광자와 전자 그리고 신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세계를 ‘물자체’라고 불렀다. 칸트의 이론을 따르자면 결국 나는 현상세계를 살아갈 뿐 물자체는 알 수 없다는 것. 

누드화를 설명하면서 거창하게 칸트를 끄집어 낸 것은, 어떤 그림이 되었건 현상세계를 이해한다는 게 지극히 나의 주관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그러므로 내가 보는 것이 가장 옳다고 고집을 세울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누드를 대하는 사람들 또한 천차만별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게 옳다 저게 옳다 하고 따질 수 없는 것이다. 몸은 그저 몸일 뿐이다. 다만 우리가 그 몸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색깔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몸을 떠나서는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아무리 에로스적인 감정을 억압하고 추방하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시로 자신을 괴롭힌다면 우리는 매일 폭력 속에서 사는 셈이 될 것이다. 과연 우리가 그처럼 동경하는 아가페라는 순수한 사랑이 몸을 떠난다면 제대로 기숙하며 발붙일 곳이나 있겠는가.

몸은 우리를 안아 주고 먹여 주고 재워주며 내 모든 감각을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몸을 자꾸만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자체가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싶다. 

브릿지맨의 작품 <목욕 후>만 봐도 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아름답다’는 말 속에는 다양한 의미가 내포돼 있겠지만 말이다. 브릿지맨은 미국인들이 사랑했던 화가였다. 그의 작품을 보고 반했던 뉴욕의 상공인들이 그를 후원하기로 하자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선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한 때 그는 이국적인 풍경을 많이 그렸으며, 작품 또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화가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말년에는 도박 빚 때문에 금전적으로 시달리다가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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