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달랑 한 장만 남아 있는 달력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후회는 잘못 살아온 삶에 대한 시간의 보복이라는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내 깐에는 잘 산다고 살았지만 돌아보면 늘 후회의 감정이 앞서는 것이다. 아마 이쯤 되면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이 나와 비슷하지 싶다. 특히 요즘은 사는 게 꿈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서산대사가 남겼다는 삼몽사(三夢詞)라는 시가 자주 떠오른다.

‘주인은 손님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主人夢說客) 손님은 주인에게 또 꿈 이야기를 하네(客夢說主人) 지금 꿈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今說二夢客) 역시 꿈속의 사람이라네.(亦是夢中人)‘ 처음 이 시를 접하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다. 지금 나의 모습이 이와 하등 다를 게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마 인생 50줄을 넘긴 사람이라면 서산대사의 이 시에 나름 공감하게 될 것이다. 눈코뜰새 없이 열심히 살다가도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보다 보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를 한탄할 때가 찾아오는 법이다. 

조선시대 실학자였던 이덕무 선생 역시 나와 비슷한 심정을 가지고 있었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취중(六月二十三日醉)에라는 시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읊었다.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났는데/ 한탄 한탄스럽군, 내 뭔 일을 하는 것인지?/ 지겹도록 남을 훔쳐보는 물정에 젖어/ 마음은 쓸데없이 시기하고 의심하네/ 아내만은 그래도 좋은 벗이라/ 외상술을 통쾌하게 잔에 따르네.‘

이시를 감상할 때마다 비록 시대는 달라도 사람 마음은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지겹도록 남을 훔쳐보는 물정에 젖어 살고 있다. 가짜뉴스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온갖 가십거리가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그렇게도 남의 인생을 훔쳐보는 것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생래적으로 그렇게 진화된 존재일까. 어쨌거나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성을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거기에다 마음은 또 얼마나 자주 의심하고 시기하는지 모른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예외는 아닐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꿈을 꾸고 있으면서 마치 현실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 인생 찰나에 불과한데도 가치 없는 것에 너무 많은 생을 탕진하고 만다는 것이다. 나 역시 저물어가는 한해의 끄트머리에 서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좀 더 사랑하지 못했던 것, 좀 더 용서하지 못했던 것, 좀 더 이해하지 못했던 것 등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래도 새해에는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비록 1회용 자기반성에 그칠지라도. 그나저나 새해에는 코로나도 모두 종식되고 예전처럼 일상을 회복했으면 원이 없겠다. 아마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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