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쉬는 날에 가족과 함께 식당에서 국수를 먹을 때 가장 행복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국수니까요.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해요.”
중동초등학교 그림책 제작 수업에서 만난 친구, 6일 동안 함께 열심히 그리고,써서 그림책을 발간한 82명 중 한 명, 그러니까 이 글을 쓴 친구는 여덟 살이다. 

“친구야. 선생님도 국수 정말 좋아해.”글을 쓴 친구에게 다가가 슬쩍 말해주었다. 
어릴 적 추억이 국수처럼 머릿속으로 후루룩 들어왔다.꼭 그 친구만 할 때였다. 우리 식구는 모두 국수를 좋아했다.

엄마는 국수를 삶아 마당 샘가로 들고 갔다. 언니가 먼저 펌프에 물 한 바가지를 붓는다. 그러면 두 살 아래 오빠가 펌프 손잡이에 올라타듯 힘을 주어 내리누른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이 콸콸 쏟아지면, 엄마는 소쿠리에 담긴 국수를 맑게 씻었다. 당연히 내가 할 일은 채 씻기지 않은 국수를 마구 집어 먹는 것이었다. 쫄깃한 그 맛!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마당의 닭들에게 자랑하듯, 방문을 활짝 열고 둘러앉아 국수를 먹었다. 더없이 행복한 맛이었다.

“난 크면 국수 공장 사장이 될 거야. 벽장 속에 국수를 가득 쌓아 놓고 매일 먹을 거야!”“나도, 나도!”
오빠 말에 언니도 맞장구를 쳤다. 그런 자식들을 엄마 아빠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등을 잔뜩 쭈그린 채 국수만 후루룩 거렸다. 연거푸 다섯 대접을 들이켜자 배가 불렀다. 그제야 비로소 등을 폈고, 국수가 수루룩 내려가 배가 남산만큼 불어났다. 그게 좋아하는 국수를 많이 먹는 내 비법이었다. 나는 지금도 국수라면 큰 냉면 그릇에 수북이 담아 두 대접쯤 금세 “후루룩”한다. 

그림책 수업을 마친 다음 날이었다. 남편이 커다란 상자를 들고 퇴근했다. 상자에는 <아하 쌀면>이라고 적혀있었다. 쌀국수였다! 아이들도 흥분해서 동그란 쌀국수 용기를 조몰락거렸다. 다음날, 교회에서 돌아오자마자 모두 외쳤다.
“오늘 점심은 쌀국수!”

남편이 물을 끓였다. 정수기 온수보다 팔팔 끓는 물에 먹어야 맛있다면서. 쌀라면을 후후 불자, 어느새 배 안에 따뜻하게 들어앉는다. 세상 어떤 고급 음식보다 우리 식구 모두를 행복하게 했다. 어려서 둘러앉아 먹던 소박한 국수 밥상! 이제는 또 다른 가족, 내 남편과 네 명의 분신들과 둘러앉아 먹는다. 어릴 적 그때처럼 행복하다. 나는 잘 안다. 성공, 돈, 명예가 가져다주는 영광이란 꽃과 같다는 걸!

화려하고 빛나 보여 모든 것을 바쳐 얻을 지라도, 더 영광스러워 보이는 어떤 것 앞에서 금방 빛을 잃고 시들어버린다. 
오히려 소소한 추억들은 내 곁에서 별처럼 함께한다. 행복한 추억 속에는 좋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국수의 추억 속에 엄마 아빠와 언니, 오빠, 내 남편과 아이들이 있듯이. 엄마의 국수가 그랬듯,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에도 하루하루 무수한 추억이 만들어졌다. 이제 아이들의 머리 속에서는 많이 사라졌지만, 세상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내 가슴 속에는 그 모든 순간들이 생생하게 빛나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의 가슴으로 내려가 탄탄한 자존감이 되어 주었다. 물론 추억은 가족뿐 아니라, 반려견, 친구와도 만들 수 있다.그렇게 가족, 친구,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한 추억들은 삶이 고난에 처할 때 지렛대가 되어 우리를 들어 올려 주고, 건널 수 없을 것 같은 강 앞에서는 다리가 되어 준다.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해요.”
여덟 살 아이들은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행복을 얻는데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는 걸! 가족과, 혹은 친구와 좋아하는 음식 한 그릇, 때로는 함께 공원을 걸을 잠깐의 시간, 함께 앉아서 보드게임을 할 작은 집, 그리고 그런 일상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그 시간들은 “행복”이라는 은행에 차곡차곡 쌓여, 험난한 일이 닥쳐올 때 찾아 쓸 무기가 된다.
요즘이야말로 추억을 저축할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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