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다가 보고 싶어 지난주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신체장애를 앓고 있는 나는 혼자 여행을 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가까운 곳으로 떠날 때도 늘 타인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웬만해서 먼 거리는 가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가을이 가는 것이 너무 아쉬워 지인 언니들에게 부탁해 함께 가자고 했다. 

현관을 나서는 순간 모든 것들이 넘어야 할 장애물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돕는 손길이 있을 땐 한결 수월하다. 오랜만에 바람을 쐬러 간다고 해 그런지 마치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는 소녀처럼 들뜬 기분이었다. 우린 이른 아침 기차를 타기에 여행 전일 우리 집에서 잠을 잤다. 오랫동안 혼자 생활해서 그런지 못처럼 들썩한 집안이 훈훈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 우리는 서둘러 역으로 갔다. 그리고 8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출발 시간이 되자 기차는 육중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점 빠르게 달리는 바람에 창밖 풍경을 온전히 구경할 수는 없었지만, 간간이 아름다운 단풍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나는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한 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건강한 육체를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솔직히 어렸을 때는 이게 꿈이라고 생각했다. 며칠만 자고 나면 나도 친구들처럼 운동장에서 뛰고 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수많은 밤을 자고 일어나도 나의 몸은 그대로였다. 그때부터 나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넘어지고 깨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나의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하자 조금씩 마음이 열리고 세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세상에는 신체장애인보다 마음의 장애인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장애인 인식개선 및 편의시설증진 사업을 통해 장애인을 보는 시선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장애인을 하대하는 사람을 볼 땐 그 사람이 더 불쌍해 보였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고 있는데 어느새 기차는 부산에 도착했다. 우리는 기차역에서 내려 부산 송도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탁 트인 푸른 바다를 보자마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함성을 질렀다.

오염된 가슴이 바닷물에 씻겨져 맑아지는 것 같았다, 파란 하늘을 닮은 잔잔한 바다는 늦가을답지 않게 포근하게 우리 일행을 감싸주었다. 우리는 부산의 싱싱한 활어로 끓인 매운탕으로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바다를 통째로 안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일상에서 일탈을 한 세 여인은 호호~ 하하~ 연신 웃었다.

어느새 해는 저물어 송도 바다의 야경이 빛을 발했다. 우리는 바다와의 밀어를 뒤로하고 숙소에 돌아와 대화를 나누다가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어둠이 짙게 내린 창밖을 보면서 생각했다. 세상에는 나보다 힘든 장애인들도 많은데, 앞으로 남은 생은 ‘신이 주신 선물이다’ 생각하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물론 지금도 세상에는 장애를 딛고 신화를 쓰는 사람이 많다. 나는 비록 그렇게 거창한 일을 하지 못하더라도 내게 주어진 문학이라는 달란트를 통해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 그래서 꾸준히 동화와 시 그리고 소설을 발표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우리는 모두 죽게 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나는 로또방을 운영하고 있다. 로또를 팔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나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행운의 로또라고.. .또 가을이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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