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처음 발생한 지 10여 개월, 전 세계 확진자는 4,0000만 명이 넘어섰고, 사망자는 111만 명을 넘어섰다(10월 20일). 각종 연구기관과 매체들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 논의의 공통점은 명료하다. 코로나19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환경 그리고 이를 지탱해온 가치와 철학, 삶의 일상까지 바꾸는 ‘문명적 현상’이라는 것, 따라서 인류는 결코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전 지구적 확산은 인류가 신봉해온 과학, 종교, 도시생활, 산업화, 세계화의 약점과 폐해를 확인시켰다. 코로나 팬데믹은 이제까지의 삶의 방식이 야기한 결과이며, 그런 점에서 이번이 마지막일 리 없다는 인식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하나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바이러스조차 이겨내지 못하는 인간은 대자연 앞에서 초라하고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은 ‘비대면‘(untact), ’거리두기’(distancing), ‘뉴노멀’(new normal)등과 같은 개념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던 ‘일상’은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토인비는 “인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정의했는데, 우리에게 이 도전은 개인적인 것, 국가적인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구촌 인류 전체가 받고 있는 도전이다. 세계의 지성들은 “세계화와 도시화를 향해서만 나아갔던 인류 문명사의 방향을 역전시키지 않고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계속 출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로나 ‘재난’의 공범인 인간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자신의 삶, 그것을 둘러싼 세계 그리고 인간을 넘어 자연과 우주에 대한 성찰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 앞에 남은 과제는 역사의 방향을 역전시키는 대안을 찾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그 어느 때보다 큰 변화와 개혁이 요청되는 시기에 우리는 전통과 관습에만 안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도 없다. 그동안 더 많이, 더 높게, 더 크게 쌓아온 자본주의 식민주의 착취 경쟁으로 지구촌을 쓰레기 동산으로 오염시킨 물질문명의 패러다임을 자연과 인간이 조화와 공생하는 생명 살림의 패러다임으로 전화하는 결단이다. 그것은 21세기 문화혁명이며 제2의 종교개혁, 문명혁명을 지향하는 새역사 창조의 철학이다. 성장과 확장이라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폐기하고,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믿음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 첫 거름은 인간의 겸손이다. 기존의 모든 오만과 탐욕을 송두리째 비우는 아픔을 견디는 일이다. 신의 아들이라 일컫는 예수는 신의 자리를 포기하고 인간으로 내려와 죄인의 누명을 받아들이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지심으로 겸손이 무엇인지 보여 주셨다.
 

유한하고 연약한 인간이 어찌 예수처럼 겸손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겸손을 고민할 수는 있으리라. 필자는 그것을 ‘작은 삶’으로 이해한다. 14세기 중세의 교부 에크하르트나 성 프랜시스는 비움(가난)에서 살았다. 그들은 능력이 없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웃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한 분들이다. 이러한 가난한 삶을 가리켜서 ‘청빈’ 혹은 ‘성빈’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는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다만 소비를 미덕으로 포장하여 지구온난화의 재앙을 가져온 병든 문명에서 생명 살림의 새역사를 향하여 지속 가능한 작은 삶을 배우는 일이다.
  

작은 삶은 내 안의 나를 찾는 내적 성찰에서 되돌아서는 참된 회개가 우러난다. 이 믿음이 없으면 미래는 언제나 절망이요, 믿음이 있으면 내일은 언제나 희망이다. 그래도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마아마 살리라는 마지막 희망을 붙잡는 것이다. 의인은 율법, 전통을 지킴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 자신을 그 앞에 드리는 제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신께 드리는 산제사인 생명의 예배다. 생명에 대한 연민, 거기에서 생명의 역사가 시작된다. 우리 모두는 살아내야 한다. 생명은 살려야 하고, 살아나게 해야 한다. 내 생존을 위해서라도, 타인의 안녕이 중요해졌기에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을 나누는 공존공영의 삶을 배워야 한다. 가장 성공한 사람은 평생 배우는 사람이다. 인간이 먼저인 생명 중심의 문명을 탄생하는 새역사를 향하여 끊임없이 묻고, 배우며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M, 루터의 종교개혁 기념일을 맞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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