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의 기행

올 초 처음 라디오 고정 패널 섭외 요청이 왔다. 청취자들에게 동화를 소개하고 낭독하는 일이었는데, 잠 잘 시간 쪼개어 일 년에 두세 권의 동화를 빠듯이 발간하는 내 처지에는 무척 버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동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동화를 소개할 창을 만들려고 뛰어도 모자랄 판에, 더구나 동화라는 기반이 없는 우리 지역에서 동화를 말할 수 있는 스피커를 쥐어 주겠다는데, 거절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부족한 재능이나마 기부하겠다는 갸륵한 생각으로 KBS라디오의 동화 소개 코너를 맡았다.

그러나 소개할 책을 선정하기 위해 여러 동화를 읽으며, 여러 관점에서 관찰하는 것은 작가인 내 가슴과 눈을 크게 팽창 시켜주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고 있다. 쓰기에도 부족한 시간인지라 부끄럽게도 그동안 좀처럼 다른 작가의 동화를 읽지 못했던 내가 매 작품을 읽으며 감동하는 것은 내 자신에게 큰 선물이었다. 역시 나눔이란 더 큰 풍요를 몰고 오는 것이라는 걸 확인하고 있다. 그중 가장 긴 여운을 남긴 작품, 아니 작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가문비어린이에서 나온 [꼬복이], 김명희 작가의 단편 동화집이다.

동화를 읽는 내내 가슴에 맑은 파도가 밀려와 부서졌다. 읽는 내내 내 마음은 파도애 깨끗이 씻기어 맑고, 더 깨끗해져 갔다. 어느 순간에는 그 씻기워진 자리에 따뜻한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어쩌면 모든 동화들이 이렇게도 맑고 따뜻할 수가 있을까?

7개의 동화 속 주인공은 하나같이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상처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작가는 햇살이 비치는 밝은 곳으로 이끌어 내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불행한 상황이라도 가슴 속에 품은 따뜻함 하나로, 지고지순한 마음 하나로 넘어서는 주인공들!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 않은 이야기들! 작가는 따뜻한 시선으로 상처를 만지고 보듬어 풀어내었다.

어떤 결핍을 지닌 아이라도 읽다 보면 절로 치유를 경험할 것 같은 이야기들, 아무리 상처가, 그늘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생생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껴안을 수 있게 하는 이야기들! 세대 간의 거리감이 크고, 모든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그것을 좇지 않고 어떤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가치들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읽는 동안 세파에 시들해진 내 마음이 일어서고, 흐릿했던 거울도 깨끗이 닦여졌다. 감동이 사라질까 봐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었다, 집필한 김명희 작가를 떠올려보았다. 세상에 아프지 않고 피워내는 꽃이 있을까?

알고보면, 한 평생 어른으로 사는 동안 비록 웃고 있을지라도, 시련이 없이, 고난이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김명희 작가는 살아오는 동안, 사삼이 살면서 겪는 가장 큰 슬픔과 고통들을 여러번 겪어낸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불 속에서 금을 끌어 올리듯,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깨끗하고 긍정적이면서 따뜻한 위로가 머문 작품 세계를 구현해 낸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녀만큼 아름다운 미소를 지니고, 어떤 이에게든 겸손하게 정성을 다하는 작가를 보기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런 힘을 어디서 끌어올리는 걸까?곰곰이 생각하다 [꼬복이] 동화집의 작가의 말을 읽어보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바닷가 오막살이 집이었습니다. 열 두채의 초가집들이 조개를 엎어 둔 것처럼 커다란 바위 옆에 있었지요. 바위가 담이 되었지만, 파도가 치는 날에는 바닷물이 마당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작가의 말의 대부분을 유년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책속에 담긴 동화들 중 그녀가 자랐던, 그러나 개발과 함께 지금은 사라져버린 바닷가 마을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혹시 그녀에게 고향과, 그리고 그 고향 속에서 보낸 유년시절이 살아오는 내내 힘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에게 유년시절이란 어떤 의미일까? 나이들수록 또렷해지는 유년기, 과연 유년시절은 어떤 힘이 있기에 이렇게 한사람의 인생을 버텨주고 들어 올려주는 지렛대가 되는 걸까? 그리고 미래에 나이가 들어 시련과 역경을 헤쳐나가야 할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무엇이 힘이 되어 줄까?

어려서부터 시간에 쫓기며 개인들이 각자 온라인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더 익숙한 아이들. 그들의 유년기 속에는 과연 어떤 힘이 있을까? 그것을 고민해야하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일 것이다. 부모라면, 교사라면, 누군가의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촌이라면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들의 미래의 행복을 위해 내가 지금 진정으로 주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광양경제신문 webmaster@genews.co.kr

트윗하기

광양경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