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 왔다. 아니 종교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직까지 이 물음에 정확한 답을 한 사람은 없었다. 70억의 인구가 있다면 70억 명의 사람들이 모두 다른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질문을 한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든 모르든 존재해야 하는 동물이다.

철학적인 지식이 있다고 해서 자신의 존재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처럼 SNS가 발달한 시대에는 상황에 따라 수시로 자신의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이제 현대인들은 다양한 가면을 쓰면서 활동하고 있다. 심지어 미디어 플랫폼에 따라 이름도 다르고 사진도 다르게 사용한다. 물론 쓰는 글의 내용도 다르다. 어떻게 생각하면 나를 표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가 있기 때문에 좋은 면도 없잖아 많다.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격의 없이 소통을 하기도 하는 반면에 전혀 다른 사람과도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하는 동안 인간관계가 깊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억눌린 내 자아를 표출하는데 있어서는 긍정적인 측면은 있다고 본다.

그러나 햇볕이 강하게 비칠수록 그림자 역시 짙어지듯이 부정적인 측면도 곳곳에 내재 돼 있다. 자칫하면 자기를 과장하거나 과대 포장할 위험성은 물론, 나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 올 수도 있다. 그렇게 다양한 나로 살다보면 도대체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멀티페르소나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 알다시피 페르소나는 다른 사람에게 투사된 성격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다. 물론 정신분석학자 '칼 융'이 만든 용어이기는 하지만 어릿광대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융에 따르면, 페르소나가 있기 때문에 개인은 생활 속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반영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자기 주변 세계와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일리가 있어 보인다. 

상황에 맞는 가면을 써야 좀 더 유리한 포지션을 선택할 수 있고, 심지어 위급한 환경에서는 생사가 결정되기도 한다. 그래서 내 속에 이렇게 많은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스스로도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어쨌거나 인간은 수많은 가면을 수시로 바꾸어 쓰면서 살수 밖에 없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생각하는 자기와 행동하는 자기가 지나치게 불일치할 때 인간은 심리적인 고통을 겪게 된다. 그리하여 타협점을 찾아내려고 하지만 그 역시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절망하곤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현대인들이 조금씩 정신분열증을 앓으며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람은 현실과 타협점(자기 합리화든 변명이든 간에)을 찾지 못하게 되면 끝없이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갈등이 깊어지게 되면 정신분열증세로 나타나는데, 누구나 한 번씩 이런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모든 사람들 내면에는 광기, 우울, 질투, 욕망, 선함, 악함, 밝음, 어둠, 증오, 사랑, 희망, 절망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또 다른 내가 그렇게 서로 동거하며 티격태격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페르소나는 개인이 성장하는 동안 가정과 학교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될 뿐만 아니라, 이런 가면 때문에 사회적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지만, 반대로 페르소나가 본래의 모습 이상으로 강조되거나 확장될 경우, 감정의 불일치로 인해 심한 갈등을 겪게 되므로 본인이 적절하게 수위조절을 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n번방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조주빈처럼 자기도 모르게 범죄자의 가면을 쓸 위험성도 배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갖고 있고, 상황에 맞게 꺼내 쓴다."는 칼 융의 말이 새삼 울림이 큰 이유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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