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는 낙서 본능이 있다. 나도 백지를 보면 뭔가 채워 넣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누군 빈 여백이 좋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빈 여백보다는 낙서라도 해서 말을 걸고 싶어진다. 아무 것도 없는 것 보다 유치한 그림이라도 있으면 안심이 된다. 그래서 나는 전화를 할 때도 항상 손에서 펜을 들고 뭔가를 끄적거리곤 한다. 내 무의식 속에 억압된 것이 많아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처음 바스키아 그림 보고 무척 당황했다. 내 눈에는 분명 낙서로만 보이는데...아마 바스키아 그림을 그냥 준다고 해도 거절하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들 이면을 보면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 이면을 알아야 우리는 문제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그는 스물여덟나이에 마약 중독으로 생을 접었다. 그의 그림이 대체적으로 어두운 것은 그가 이유 없이 차별 받은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곳이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현실이다. 그는 그림을 통해 왜곡된 현실에 저항을 했던 것이다. 그런 뜻에서 보자면 왜곡된 것은 바스키아가 아니라 부조리한 이 세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스키아는 그림 속에 온갖 언어를 다 집어넣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림 속에 든 글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음표이야기를 했다. “음악가에게 음표를 어디서 따오는 것인지 물어 보라. 아니 당신은 언어를 어디서 따오는가?” 젊은 사람들은 바스키아에게 열광했다. 낙서처럼 아무렇게나 그리는 그의 그림과 자유로운 그의 삶이 좋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때론 누군가를 통해 대리충족을 느껴야 숨통이 트일 때가 있다. 크리스찬 디올의 향수 제품 중 ‘뿌아종’이라는 향수가 있다. 그런데 뿌아종의 뜻이 독(毒)이란다. 향수와 독이라니, 그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낱말이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때론 가장 아름다운 것이 가장 치명적일 수 있고, 가장 어두운 것이 가장 밝은 것이 될 때가 있다. 이런 모순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분법적인 문장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빈틈없이 정제 된 그림보다 낙서처럼 보이는 이런 그림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다. 바스키아 그림은 항상 자유와 고독의 냄새를 풍긴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을 땐 가슴이 먹먹해지게  마련인데, 바스키아 그림이 그렇다. 그러니 판단하지 말고 해석하지 말고 직감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물론 이것조차 힘들어 하는 사람이 태반이겠지만.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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