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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지성소(至聖所)가 필요한 현대인들오경택 행복전도사
  • 광양경제신문
  • 승인 2019.09.1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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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아져서 가을인지 아니면 가을이 되어서 생각이 많아지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을의 길목에 들어서자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다. 근심할 수(愁)자에 가을 추(秋)자가 들어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 가을의 길목을 지키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고독이다. 사람들은 고독을 마치 무슨 병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사람은 고독을 통해 성장하는 법이다. 고독의 과정을 밟아 보지 않는 사람은 타인은 물론 삶의 가치 또한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고독은 우리 마음과 영혼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햇살과 같다. 고독의 당도가 높을수록 생각의 당도도 높아지는데, 현자들이 의도적으로 홀로 있는 시간을 마련한 이유다. 고독은 결코 질병이 아니다. 현대인들이 고독을 오해한 나머지 ‘고독사’라는 부정적인 말을 만들어 퍼트리고 있는데,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독사라는 말보다 ‘고립사’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진짜 고독의 본질을 아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생명을 함부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고독은 영혼의 성장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광야와 같다. 그런데 아쉽게도 현대인들은 그런 광야를 잃어버렸다. 홀로 자신과 세상을 깊이 관조하며 생각하는 장소를  빼앗겨 버린 것이다. 온갖 영상과 소음이 고독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바람에 스스로 고립되고 만 것이다. 사람들은 고독해서 밖으로 뛰쳐나가는 게 아니라 외로워서 뛰쳐나가는 것이다.
예수는 광야에서 하늘의 음성을 들었고, 부처는 광야에서 득도 했으며, 모세는 광야에서 신의 계시를 깨달았다. 아니 모든 예술작품은 고독 속에서 잉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거창한 고독을 경험할 수는 없겠지만, 하루에 한번쯤은 고독의 지성소를 찾을 필요가 있다. 고독의 지성소라고 해서 굳이 건물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조용한 공원 벤치도 지성소가 될 수 있고, 새벽에 홀로 일어나 명상을 하는 거실도 고독의 지성소로 충분하다.
사람이 삶의 경이로움에서 눈을 뜨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고독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익숙함과 권태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고독에게 잠시 나를 맡기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 내면은 새로운 것에 눈을 뜨게 되며, 새로운 것에 눈을 뜨게 될 때 삶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 재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고독한 시간을 통해 무너진 삶을 다시 보수할 수 있고 상처 난 마음을 다시 치료할 수 있으며 지친 원기를 다시 회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가을에는 스스로 고독 속에 빠져보자. 우리는 고독한 시간을 통해  삶의 깊은 의미를 건져 올릴 수 있다. 대지라는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펄벅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 안에는 나 혼자 살고 있는 고독의 장소가 있다. 그 곳은 말라붙은 마음을 소생시키는 단 하나의 장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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